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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정유년(丁酉年)은 어떻게 다가올까?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던 해를 아쉬움 속에 보내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유난하다. 주권자에 대한 참기 어려운 모독이 이어지면서 병신년(丙申年)이 어서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유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마무리를 부탁하면서.

 그런데, 아닌가? 벌써부터 닭들이 죽어간다. 조류독감 때문이다. 고병원성이므로 발생 장소에서 반경 3㎞ 이내의 닭들이 불문곡직 살처분될 텐데, 그렇게 죽는 닭 중에 조류독감에 감염된 개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철새의 배설물이나 사체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부화한 지 고작 5주도 채 안 된 수천, 수만의 어린 생명들은 한꺼번에 생매장되겠지. 정유년이 다가오기 전부터 닭들이 비극을 맞았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무려 8억 마리의 닭을 먹어치운다. 하루 200만 마리가 넘는다. 그만큼 치맥이나 삼계탕을 위해 커다란 자동기계가 동원되는데, 정밀한 기계는 오차범위가 좁다. 닭의 무게와 크기가 들쭉날쭉하면 고장난다. 값비싼 기계를 고장나게 만든 농장은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와 거래가 끊어져 파산할 것이므로 치맥이나 삼계탕용으로 육종된 닭은 타고난 유전 다양성을 거의 잃었다. 그래야 예측 가능하게 사육 가능하다.

 유전 다양성을 잃은 닭은 환경변화에 아주 약하다. 빠른 시간에 몸집을 키우도록 육종된 닭은 양계장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할 뿐 아니라 사료도 엄선해야 한다. 그 사료는 대부분 옥수수다. 그것도 유전자를 조작한 미국산이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타고난 유전 다양성을 잃은 옥수수인 까닭에 경작 조건이 까다롭다. 다량의 제초제와 살충제 뿐 아니다. 경작에서 운송과 저장까지, 옥수수에서 얻는 칼로리의 10배에 해당하는 석유가 동원돼야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다. 우리는 한 마리의 닭을 먹는 게 아니다. 닭 무게의 적어도 4배 이상의 옥수수를 먹는 셈이고 그 옥수수 10배의 석유 칼로리를 들이키는 꼴인데, 석유는 언제까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을까? 산유국은 자료를 감추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10여 년 전부터 석유는 고갈을 예고했다고 주장한다. 유정에서 퍼 올리는 양보다 커진 소비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는 파리협정이 발효됐지만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못한다.

 북극해에 얼음이 얼지 않으면 우리 같은 중위도 국가들은 겨우내 혹독한 한파에 시달리게 된다. 제트기류가 느슨해져 북극의 냉기를 잡지 못하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기상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올 겨울은 그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고한다. 지구온난화 원인으로 사막화가 심화되는 몽골에 눈이 덮이지 않아 황사가 잦을 것이며 중국인의 석탄 사용이 늘어나면서 미세먼지도 극성일 거라 예보한다.

 공기정화기로 거를 수 없는 초미세먼지는 영흥도 화력발전소의 높은 굴뚝에서 막대하게 배출될 텐데, 인천의 정유년이 특히 걱정이다. 300만이 춥다고 난방열을 높이고 전기난로 스위치를 켠다면 초미세먼지는 더욱 늘어날 테지. 치맥을 주문하는 횟수가 늘어나도 마찬가지일 텐데, 아파트에서 맞는 겨울은 작년 이상 따뜻할 게 틀림없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가 남아 도는 현실이므로.

 조류독감은 탐욕의 부메랑이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야 했던 시민들은 병신년에 받은 모독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살펴야 한다. 혼이 비정상인 자들의 지독한 탐욕이 빚은 이번 사태는 어쩌면 필연이었다. 그동안 발전, 개발, 경제성장이라는 신기루에 취해 탐욕을 동경했고 민주주의를 비웃으며 표를 던지지 않았나. 그 결과 후손이 마주해야 할 다채로운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원은 탕진되고 말았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번 정유년은 내일을 희망으로 안내하는 닭의 다부진 울음으로 열었으면 좋겠다. 더 춥고 목이 칼칼하더라도 미래세대를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행동했으면 좋겠다. 후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세대정의를 생각하는 삶을 모색해야 옳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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