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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될 것인지 여부가 결정된다. 소위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직권남용, 직무유기, 뇌물, 강요, 권리행사 방해, 사기, 직무상 비밀누설, 심지어 대학입시 비리까지 각종 불법과 비리의 종합판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권력형 비리를 압축해 폭발시킨 모습이다. 이렇게 참담한 일들이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과 그 최측근들에 의해서 자행됐다는 사실에 우리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 언론 보도 이후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기까지 과정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지만 가장 평화롭고 성숙한 모습으로 진행됐다. 우리 국민들은 소중한 주말을 본인과 가족이 아니라 국가와 미래를 위해서 투자했다.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모이는 집회가 매주 계속됐고 참가자들은 후대에 모범을 보이기라고 하려는 듯 질서를 잃지 않았다. 집회 현장은 우아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우리 국민들은 부패한 권력자에 대비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한민국의 주권자가 국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해 줬다.

 일부 극우적인 인사들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거나 "북한의 아리랑축전을 연상시킨다"라면서 비아냥거렸지만, 어설픈 진영논리가 성숙한 국민들에게 먹혀들 리가 없었다. 국민들의 집회와 참여는 이념대립과 사회갈등의 산물이 아니라 권력자에 의해서 훼손된 헌법정신과 법질서를 국민들 스스로 회복시키고 치유하는 과정이다. 국민들이 감시하고 심판하지 않는다면 위탁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것처럼 함부로 휘두르고 결국 부패하고 만다는 것은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알았다. 민주주의는 국민 위에 있는 치자(治者)를 용납하지 않는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훼손하는 사람이며 국민들은 이런 권력자를 끌어내려 심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예정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헌법질서의 수호를 위해서 파면될 수 있으며, 파면 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당한 정치적 혼란조차도 국가 공동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 비용으로 간주하는 결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제도이며 파면으로 인한 혼란은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수술을 할 때 어쩔 수 없이 멀쩡한 피부를 메스로 찢어야 한다. 탄핵에 수반되는 혼란은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성숙한 모습에 비추어 대통령 탄핵절차는 오히려 우리나라 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에 초석이 되리라고 믿는다.

 다만 첨언하면 솜씨 좋은 의사가 수술을 할 때 많은 흉터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탄핵절차는 길게 가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인데, 헌법재판소는 신중하게 심리하되 최대한 신속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돼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게 되지만 국무총리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사람이 아니므로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 그러므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기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 헌법적 요구이다. 또 당장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권한 중 어느 범위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논쟁이 있으며,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는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아 탄핵 심리 중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해야 하는지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외교적으로도 실권이 없는 국무총리를 외국에서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대통령이 국민을 실망시켰지만 국민들은 가장 아름답고 성숙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위기와 혼란이 아니라 헌법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예정한 절차이며, 위대한 국민들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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