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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조선왕조는 백성들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다시피 한 배고프고 굶주린 나라였다. 이처럼 가난한 왕조가 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단일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강상(綱常)과 윤기(倫紀)를 치도의 이념으로 삼아 국가기강을 올바르게 견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엄격한 국가기강의 배후에는 도덕적 용기를 갖춘 언관들과 사간들의 목숨을 내놓는 직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용기 있는 직언을 편년체의 일기로 기록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은 붓을 든 선비가 칼을 찬 무반을 통제했던 국가였다. 세계사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임진왜란도 칼을 휘두른 일본의 사무라이를 붓을 쥔 조선의 선비가 이긴 전쟁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조선 사대부의 강한 기개와 도덕성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양반이 기득권을 움켜쥔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출세 지향적이었다면 선비는 권력을 경계하고 이타적이며 애민적이고 희생 지향적인 존재였다. 이런 양반과 특히 현재의 대한민국 검찰의 모습과 행태가 어딘지 흡사하게 연상되는 것이 우연은 아닌 듯싶다. 조선의 국정이 체계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조선 사대부의 철저한 선비정신이 국정 운영에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이 양반의 나라가 아닌 선비의 나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우고 익힌 바를 반드시 실행하는 지행과 더불어 불의에 맞서는 도덕적 용기는 조선의 정치적 지배 구조를 꿰뚫는 성리학적 이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엄격한 이념의 토대 위에서 성장한 사대부들에 의해 조선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투명한 국정 운영이 가능했다. 예컨대 중종 12년 4월 4일 조강에서 특진관 이자건은 중종의 면전에서 자연재해의 책임을 임금의 탓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이자건에 이어 조광조 또한 조정에서 무식한 재상과 결탁해 그들에게 아부하며 이권을 챙기는 소인배들의 축출을 중종에게 강력하게 직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 주변에는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단 한 사람의 고위 관료도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오랫동안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법과 질서를 중시하고 도덕성을 국가 운영의 기치로 삼은 데에 있다. 산업자본주의의 출발국이자 노동자 천지인 영국에서 노동당보다 보수당의 집권 기간이 더 긴 이유도 대처 수상의 이러한 국정 운영 방식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이에 반해 민주적 보수가 아닌 권위주의적 보수를 지향했던 박 대통령에게 장관이나 수석 비서관은 정치적 동지가 아닌 자신에게 예속된 종속적인 공직자에 불과했고, 심지어 대통령은 여당까지도 자신의 손아귀에서 춤추는 무기력한 정치집단으로 전락시켰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민간인 비선 실세에 의해서 국정 농간 사태가 묵인됐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느끼는 모욕감과 허탈감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최 씨 일가에게 모르고 속은 것이 아니고 알고도 방조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촛불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권력을 일개 민간인이 행사하도록 용인한 것에 대한 분노와 상처받은 자존심의 표시이다.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훼손시킨 청와대와 대통령을 더 이상 신뢰할 수는 없다는 국민들의 결단이 광장의 외침으로 나타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 위배 사유에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 위배, 직업공무원 제도 위배, 시장경제 질서 위배, 언론의 자유 위배, 세월호와 관련된 생명권 보호 위배 등이 지적됐지만 탄핵의 핵심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것에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함께 한국은 이제 실패한 부녀(父女) 대통령을 낳은 국가가 되었다.

 자치통감의 저자 사마광은 임금의 근심은 신하의 간사한 것을 알지 못하는데 있으나, 만약에 알고서 다시 용서해 주면 알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이 간사한 실세들을 목숨을 내놓고 견제했던 인물이 조선의 선비였다. 성균관 대성전인 문묘에 위패가 모셔진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비롯해 김인후, 성혼, 이이, 조헌, 송시열, 송준길, 김장생, 김집, 박세채 가운데 어느 한 분만이라도 박근혜 대통령 곁에서 대통령을 끝까지 지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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