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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쿠바혁명의 상징인 피델 카스트로가 90살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기사와 대학 연구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쿠바 이민 후손들이 인천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쿠바의 코레아노를 생각하게 된다.

 인천항은 1902년 12월 하와이 이민선이 첫 출항한 이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해 1905년 4월 초에 금지되기까지 65편의 선편으로 7천226명 내외가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떠났던 현장이다.

 이민이 금지되는 즈음, 1905년 4월 4일 인천항에서는 또 다른 이민선이 출항했는데, 도착지는 멕시코였다. 당시로서는 국교도 인적도 왕래도 전혀 없던 낯선 라틴문화권에, 그것도 가장 먼 지역인데다가 가장 더운 지역으로 떠났다. 무엇보다 4년 동안의 계약노동, 부채노예라는 특이한 이민의 형태였고, 단 1회로 끝났던 이민이었다. 멕시코 이민은 1904년 영국인 마이어스(John G. Meyers)가 멕시코 농장주들과 동양인 이민을 계약하고 중국과 일본에 가서 이민을 모집하려다가 실패한 후, 한국에 와서 대륙식산회사라는 이민회사를 경영하던 일본인과 결탁해 노동이민을 모집함으로써 시작됐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이민모집이 실패한 것은 이미 멕시코 노동이민이 불법성을 띤 나쁜 조건의 계약노동임이 탄로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어스와 공모한 일본인 모집자는 대륙식산회사를 확장해 서울, 인천, 개성, 평양, 진남포, 수원 등 6곳에 대리점을 두고, 그해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황성신문 등에 그럴듯한 조건을 제시한 ‘농부모집’의 과대광고를 내는 등 갖가지 방법을 써 가난한 이민자를 모집했다.

 그 결과, 전국 18개 지방에서 1천18명(혹은 1천33명)이나 끌어 모았다. 그 중 인천출신들도 225명이나 됐다. 이들 이민자는 일본인 모집자와 통역 권병숙의 인솔하에 영국선 일포드호(S.S.Ilford)에 탑승, 1905년 4월 4일 인천을 출발해 40일간의 항해 끝에 5월 중순 멕시코 남부 살리나 크루스(Salina Cruz)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민 브로커들이 개입해 단 한 차례에 끝난 대규모의 불법 계약 노동 이민이었던 탓에 그들을 맞이한 것은 지상 낙원이 아니라 유카탄의 뜨거운 불볕 더위와 난생 보지도 못한 에네켄(henequen)밭이었다.

 그 후 이들 노동이민은 30여 개의 에네켄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4년간의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다. 멕시코 특유의 농장 에네켄 아시엔다(Hacienda)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한인들은 형식상 계약노동이었지만 실제적으로 채무노예나 다름없었고, 비참한 생활상이 국내에 알려져 구제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이민이 금지되기도 했다.

 에네켄 농장에서의 한인들은 1909년 5월 4년간의 노동계약이 끝나고 해방이 될 수 있었지만, 멕시코 내란과 혁명의 와중에서 한인들의 생활은 향상되지 못했고 1921년 멕시코 한인 288명은 다시 쿠바로 재이민을 가게 됐다.

 하지만 이들이 쿠바에 도착할 무렵 국제 설탕 가격이 폭락하면서 또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인들은 마탄사스 농장 지역의 에네켄 농장에서 집단촌을 형성했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해 6월 한인들은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를 설립했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쿠바 내정의 변화로 한인 단체들이 와해되면서 세대 교체와 함께 정체성의 상실도 가속화됐다. 특히, 1959년 카스트로와 체게바라의 쿠바혁명 이후 남한과 미국의 한인회 등과 단절돼 전통적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을 이어가기 힘들게 됐다. 쿠바의 한인 후예들은 대부분 원주민과 결혼하면서 뿌리를 잊은 채 쿠바에 동화돼 쿠바의 코레아노가 됐던 것이다.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한인동포는 전 세계 175개국 720여만 명이다. 과거 정치,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등져야 했던 이민 선조들이 있었다면, 현재 우리는 다른 나라의 이민을 받아들이고 이들에 의해 형성된 다문화공동체를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민 선조들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살펴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재확인해 보는 것도 ‘문화주권’시대 인천을 이해하는 한 방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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