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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단어처럼 붙였다 하면 몸값을 올려 버리는 용어가 있다. 자동차, 신용카드, 아파트. 화장품, 비행기뿐 아니라 고속버스 좌석과 아동복에 이르기까지, 해당 상품이 ‘프레스티지’라는 용어를 동반하면 이를 구매하는 고객은 마치 타인과는 구별되는 고급스러운 지위를 획득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소수만이 이용할 수 있다는 희소성과 심리적 차별성은 사용하는 사람의 자신감마저 불러온다. 그런 당당한 자기 확인은 스스로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일 거라는 계급적 우위를 선점하게 만든다.

경제적 차이가 결국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지위, 교육, 직업, 가문 등 일체의 격차를 확인케 해 주는 용어 ‘프레스티지’. 지금은 사어(死語)가 됐지만 본래 마술에서 최고 단계의 속임수, 트릭을 일컫는 의미에서 기인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 ‘프레스티지’는 그 첫 번째 어원과 관계 깊은 내용으로, 두 명의 라이벌 마술사가 펼치는 비극적인 복수극을 다룬 2006년도 작품이다.

때는 세기 말과 세기 초의 어지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1900년대 말 런던. 부유한 귀족 집안의 쇼맨십이 강한 앤지어와 고아 출신에 거친 성격의 고든은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료로 최고가 되기 위해 함께 땀을 흘린다. 그러나 고든의 실수로 수중마술이 실패로 마무리되고, 도우미로 활약 중인 앤지어의 아내마저 사망하게 되면서 둘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앤지어와 고든은 서로의 마술쇼를 염탐하며 각자 최고의 마술로 밀고 있는 마지막 하이라이트 ‘순간이동 마술’의 결정적 비밀을 밝히려 애쓴다. 순간이동 마술을 먼저 선보인 고든의 쇼는 완벽에 가까웠다. 이후 앤지어는 고든의 쇼를 카피하고 추가적으로 화려한 스펙터클과 물량공세를 앞세워 환상적인 볼거리를 연출했으나 언제나 자신의 쇼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뒤 앤지어의 쇼는 고든의 것을 훨씬 뛰어넘는 최상의 프레스티지를 보여 주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최고의 마술사라 불리는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자신을 비롯한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인생마저 파멸로 몰아간다.

평단의 다소 싸늘한 평가와는 달리 영화 ‘프레스티지’는 2006년 개봉한 이래 현재까지도 마니아 관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메멘토’, ‘베트맨 다크나이트 3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의 화려한 필모그래피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으로, 일련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진실과 허상의 경계에 대해 고뇌하는 감독 특유의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좀 더 방점을 찍는 부분은 눈 먼 질투에서 오는 복수와 광기에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아닌지를 결정짓는 시선이 이미 객관성을 잃은 ‘눈’에 의해 결정된다는 데에서 실체적 진실은 사라져 버린다. 오로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편협한 시선은 이들의 마술적 가치를 높이지도 않고, 그들의 품격마저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린다. 결국 광적인 질투에 눈 먼 두 사람은 자멸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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