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익 인천환경공단 이사장.jpg
▲ 이상익 행정학 박사
얼마 전 주한 중국문화원과 인천여성의 광장에서 3개월 과정의 고급 중국어를 수강한 적이 있다. 두 과정 모두 각각의 특성과 장점에 따른 시너지 효과로 중국을 더 잘 이해하고 중국어 수준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중국문화원에서는 중국어 외에 태극권, 고쟁, 서예, 중화요리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사진은 한국에 정통한 최정예 멤버로 구성돼 있다. 특이한 사항으로는 강사들이 한중 간 정치, 외교 등 예민한 현안들에 대한 언급이 일체 없다는 것과 각종 공식 행사를 소개하는 책자나 홍보물에는 중국 정부의 전략 용어인 "일대일로(一帶一路)"가 빠짐 없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일대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통해 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구상으로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10월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처음 제시한 전략이다. 중국의 21세기판 실크로드이자 중국식 마샬 플랜이라 할 수 있다. 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창구가 다름 아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중국에서는 몇 가지 매우 유의미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먼저 세계 최장 고속도로인 중국 베이징과 우루무치를 잇는 총길이 2천582㎞의 징신(京新) 고속도로 중 바단지린사막(巴丹吉林沙漠)을 관통하는 린바이(臨白) 구간(930㎞)을 완공했다는 펑파이신문 보도였다. 경부고속도로의 6배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로서 총투자액이 한화로 6조1천372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 사업이다. 또한 홍콩과 주하이(珠海), 마카오를 연결하는 총연장 55㎞에 이르는 세계 최장 해상대교를 내년 말 연결한다는 차이나데일리의 기사였다.

 특히 국내에서는 최순실 사건과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 등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인 지난 11월 18일 중국 중앙TV(CCTV4)는 선쩌우(神舟) 11호 유인우주선과 두 명의 우주인의 성공적인 지구 귀환을 생방송했다. 우주항공 분야의 일대일로라는 웅대한 목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럼 중국의 대외 정책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건국 초 마오쩌뚱은 ‘심알동 광적량 부칭패(深窟洞 廣積糧 不稱覇, 굴을 깊이 파고 식량을 비축하며, 패권자라 칭하지 말라) 또한 1970∼80년대 덩샤오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 재능을 감추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와 같이 다소 신중하고 방어적인 대외정책을 견지했다. 그러다 1990년대 장쩌민은 경제성장에 따른 달라진 위상을 보여 주듯 유소작위(有所作爲, 대국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겠다)라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2000년대 후진타오는 초기에는 화평굴기(和平屈起, 평화롭게 성장한다)라는 온화한 입장에서, 미국·일본과 군사, 영토 분쟁 등 복잡한 국제관계에 직면하면서 돌돌핍인(口出口出逼人, 거침없이 상대를 꾸짖고 압박한다)이라는 강경 모드로 선회했다. 현 시진핑 주석도 세계 두 번째 강대국(G2)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특히 미국과 일본에 대해 동일 연장선상에서 더 강력한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의 입장이 가장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 빠져 들고 있다. 우선 한미 간 한국 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부정적인 반응은 중국 항저우(抗州)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냉담한 의전 형태로 나타났다. 더욱이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은 중국에게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조치로 까다로운 비자 발급 절차, 관광을 비롯해 연예계와 방송에 대한 금한령(禁韓令), 수출 제품 통관 거부, 한국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각종 국제회의의 일방 취소, 한국에 대한 무차별적인 부정적인 언론 보도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되리라 예상된다.

 지난 1994년 중국 톈진쓰(天津市) 인천무역관 대표로 재직 시 현지에서 들은 의미심장한 일화가 있다. "일본과 중국이 외교 협상을 벌일 때 중국인은 테이블 밑에 미리 칼을 준비하고 시작하는데, 끝날쯤에는 그 칼은 일본인 테이블 밑에 와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의 경우, 외교 협상 시작 전 한국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칼은 협상이 끝날 에는 어느 새 일본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라는 것이다. 한일 간 외교력 차이와 지난 세기 동북아 지역의 역학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말하기는 쉬운데 실행하기는 어렵다(說起來容易 做起來難)"는 격언을 과감히 깨는 지혜와 능력, 실행력을 갖춰야 할 최적의 시기라고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