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가노 호숫가
스위스 남부에 위치한 루가노(Lugano)는 이탈리아와 경계를 이루는 루가노 호수와 하늘이 맞닿은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다. 루가노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진 역사, 문화에 축제와 쇼핑을 결합시켜 특유의 글로컬 브랜드를 만든 스위스의 대표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예전에 조성된 골목골목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쇼핑 마니아라면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는 명품 브랜드 매장들은 방문객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골목 구경과 쇼핑을 마친 관광객들은 광장 등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여해 색다른 문화를 즐길 수도 있다.

 그것도 싫증이 났다면 루가노 호(湖)를 오가는 유람선에서 한적하게 자연을 감상할 수도 있다. 일부 관광객에게는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와 산등성이를 둘러보는 힐링 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머무는 하루하루가 전혀 지루하지 않는 이곳, 과거 한적한 어촌마을이었던 루가노는 이제 전 세계인들이 찾는 글로벌 관광도시가 됐다.

# 골목이 살아있는 도시 루가노

루가노는 골목이 살아있는 도시다. 역사와 전통이 남아 있는 ‘비아 페시나(Via PESSINA)’와 명품 매장이 줄지어 들어선 ‘비아 나사(via NASSA)’ 거리는 각각의 독특한 멋을 뽐낸다.

▲ 페시나 거리 골목
페시나 골목은 루가노의 전통 음식과 식재료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길가에 펼쳐진 가판대에는 각종 샐러드와 빵, 고기와 채소를 곁들인 도시락들이 저렴한 가격에 관광객들의 입맛을 돋우게 한다. 앞서 소개한 이탈리아처럼 루가노의 상인들 역시 슬로푸드를 지향한다. 자신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식재료들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정확히 알고 공정한 가격으로 사와 손님들 앞에 내놓는다.

페시나 거리에는 비교적 작은 가게들이 많은 편인데, 오랜 기간 대를 이어 장사를 하고 있는 곳도 꽤 많다. 1803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알 포르토(Al Porto) 카페는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의 대표 디저트인 ‘몽블랑(Mont Blanc)’은 마치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을 직접 보고 있는 느낌이다. 알 포르토 외에도 영업을 100년 이전부터 시작했다는 홍보 문구는 한두 집 건너마다 보일 정도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골목은 보세 가게들이 자리잡고 있다. 오래된 신문 등을 파는 잡화점을 비롯해 여성 의류, 장신구, 엽서, 기념품 등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기대 없이 들어간 곳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게 되는 ‘득템(아이템을 얻는) 거리’라고 불릴 만하다.

비아 나사 거리는 현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나사(NASSA)’란 어부들이 물고기를 담던 바구니를 말한다. 과거 어부들이 바구니를 들고 오갔던 거리가 이제는 명품 거리로 변신했다.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까르띠에, 불가리 등 다수의 명품 매장들이 입점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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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사 거리.
나사 거리 끝자락에는 1499년에 만들어진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gli Angeli)이 있다. 이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가 그렸다고 전하는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어 관광객들의 주요 방문지 중 하나다.

루가노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884년 피아차 델라 리포르마(Piazza della Riforma) 광장이 만들어지면서라고 한다.

마리에 리제(61)루가노 관광정보센터 관계자는 "성당이 만들어지면서 골목들이 생겨났고, 리포르마 광장이 조성된 이후 루가노가 더욱 알려지게 됐다"며 "이탈리아를 넘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도시가 루가노인데, 교통의 요충지에 있고 호수를 낀 휴양지이기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 지역 축제와 천혜의 자연환경

루가노에는 1년에 적어도 24개 이상의 축제가 열린다. 3월과 4월 사이에는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엔터테이닝 축제(Pasqua in citta)가 열리고, 6월까지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루가노 페스티벌’이 진행된다. 7월까지는 재즈 콘서트가, 8월과 9월에는 블루스부터 팝 가스펠까지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축제(Blues to Bop Festival)가 열린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점등식과 먹거리 장터 등이 진행되는 ‘크리스마스 광장 축제(Natale in Piazza)’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 식료품 가게 ‘가파니’의 프란체스코 가파니 사장
마리에 리제는 "루가노에는 상당히 많은 축제가 열리는데, 시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도 있고 주민들이 주도하는 행사도 있다"며 "봄과 가을에 특히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루가노 시내에서 출발해 호수를 돌며 작은 마을마다 정박하는 유람선도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여행 코스 중 하나다. 각 마을에는 이탈리아 건축양식에 영향을 받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을 골목을 돌아보다 다리가 아플 때 즈음 호수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차와 식사를 하는 멋은 루가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 페시나 거리의 터줏대감 ‘가파니’ 식료품점

1937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식료품 가게 가파니(Gabbani)는 동종 업계 중 페시나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처음 할아버지가 시작했던 가게는 지금 손자인 프란체스코 가파니(29·Francesco Gabbani)가 형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80여 년 전에는 몇 가지의 샌드위치와 식료품을 파는 가게였지만 지금은 치즈 종류만 300종, 5천 개가 넘는 품목을 판매하는 대형 매장으로 확장했다.

▲ ‘가파니’ 식료품점.
가게에 대한 프란체스코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우리는 고품질의 재료를 사용해 좋은 가격에 판매합니다. 치즈는 브라나 폴렌조 등 옆 동네의 로컬푸드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직접 가서 보고 확인한 후 가져오는 거죠. 샌드위치나 도시락 등 우리가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음식도 있습니다. 7유로짜리 샌드위치에도 최상의 재료를 넣어서 만들고 있지요."

가파니의 이름을 붙여 파는 제품은 크게 두 종류다. 햄 종류와 직접 만든 요리인데, 1937년부터 팔기 시작했던 살라미(salumeria, 햄 종류)는 아직도 인기가 좋다. 또한 빵에 발라 먹는 제품인 ‘파테 라고’는 할아버지의 레시피가 담긴 음식으로 베스트 메뉴 중 하나다.

"우리의 경영철학은 딱 두 가지입니다. 식재료의 질이 좋아야 한다는 것과 젊은 고객층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죠. 오래된 가게다 보니 나이 든 분들이 많이 옵니다. 노인들만 이용하는 식당이라는 이미지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가게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마다 젊은이들 300여 명이 참석하는 ‘해피 아워(Happy Hour)’ 행사를 만들었어요.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에 음료를 시키면 음식은 무료로 제공하는 거죠. 햄이나 치즈, 빵 등을 제공합니다. 나는 지금 내 일을 사랑하고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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