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는 그린시티(Green City) 혹은 태양의 도시(Solar City)로 전 세계에 알려진 곳이다. 독일과 프랑스·스위스의 삼각 중심에 위치한 이곳은 인구 22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약 9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기도 하다. 17세기 당시 종교 분쟁으로 인한 30년 전쟁(Thirty Years’ War, 1618∼1648)의 여파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아직도 중세풍의 구시가지와 유적들이 남아 있다. 또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배경이 된 ‘검은 숲’도 있어서 관광도시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프라이부르크가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이유는 ‘친환경 생태도시’라는 글로컬 브랜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마다 세계 각국에서 150여 명이 벤치마킹을 가고 있다. 도시의 43%가 나무와 숲으로 이뤄져 있으며 태양광과 풍력,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활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또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시민들의 비율은 독일 도시 중 가장 낮은 반면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비율은 절반에 달한다.

 이번 글로컬 브랜드 활용 사례는 친환경 생태도시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독일의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다.

# 원전 반대 시민운동이 그린시티의 모태

▲ 프라이부르크 트램
프라이부르크가 처음부터 친환경 생태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1970년 독일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프라이부르크 근교에 원자력발전소 설치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발전소 건설을 반대한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전력 생산을 위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그린시티 운동의 모태가 됐다.

 프라이부르크는 독일 내에서도 포도주와 목재 무역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과거 포도밭을 하던 주민들 사이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포도 생산에 차질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확산되면서 대학생들까지도 참여하게 됐다.

 랄프 디쉬(Rolf Disch·62)는 당시 원전 반대와 친환경 운동을 주도하던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무조건 반대’가 아닌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공인 건축학을 살려 원자력을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태양광을 제시했다. 연중 일조시간이 1천800시간에 달할 정도로 햇빛이 좋은 지역 특성을 살려 환경에너지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린시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원자력발전소를 이겨냈다. 이후 1979년 프라이부르크에는 세계 최초로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기 시작했으며, 1981년 프라이부르크 시정부는 프라운호퍼 솔라에너지 시스템(Fraunhofer ISE) 재단을 설립해 태양광 에너지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1987년 당시 프라이부르크 시장이 그린시티로의 전환을 선포한 이후 시정부는 ▶에너지 보존 ▶신기술 사용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 사용 등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2050년까지 사용할 100%의 신재생에너지를 모으기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는 목표였다. 현재 프라이부르크는 연간 총 전력량 중 25%를 신재생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다.

# 도심 곳곳에 스며든 친환경 에너지 정책

▲ 시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도로변에 30~50cm 규모로 작은 수로가 조성돼어 있다.
프라이부르크 중심가는 뮌스터 대성당을 중심으로 반경 1.5㎞ 구간에 자동차가 다니지 못한다. 대신 노면 전차인 트램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을 대신한다. 또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도시 내에는 적게는 수백 대에서 많게는 수천 대까지 수용할 수 있는 자전거 보관소가 거점마다 설치돼 있다. 프라이부르크 역사 인근에 마련된 3층 규모의 자전거 보관시설에는 자전거 수리점과 카페도 들어서 있다.

 도시에는 총연장 420㎞에 달하는 자전거도로도 만들어져 있고, 카셰어링에 사용되는 자동차는 모두 전기차다. 트램 역시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된다. 이곳이 친환경 생태도시임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는 교통수단별 이용비율 통계다. 2013년 기준 자동차를 이용하는 시민은 32%에 불과했고 자전거 27%, 도보 23%, 트램과 버스 등 대중교통 이용률은 18%로 조사됐다. 2015년 기준으로는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합친 이용률이 48%에 달했다. 반면 프라이부르크의 자동차 보유비율은 인구 1천 명당 423대로 독일 도시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곳은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할 때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데 가장 중점을 둔다고 한다. 노후 건축물은 에너지 효율성에 기초해 개·보수를 하고, 신축 건물은 패시브 하우스(에너지 절약형 주택) 표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시정부가 저리로 대출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도시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도로변에는 30~50㎝ 규모로 작은 수로가 조성돼 있다. 중세시대부터 도시의 명물이 된 이 수로(Bachle, 베힐레)는 인근 드라이잠 강의 물을 끌어들여 도심에 시원한 물길을 만들어 낸다. 수로에 발이 빠지면 이곳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전설은 특히 흥미롭다.

# 그린시티의 대표 명소 보봉(Vauban)지구

▲ 태양광 설비가 각 건물마다 설치돼어 있는 보봉지구
그린시티 프라이부르크의 대표적인 명소는 바로 보봉(Vauban)지구다. 과거 프랑스군 주둔지였던 이곳을 시정부가 그린시티 사업을 위해 내보냈고 1992년부터 재정비가 시작됐다.

패시브 하우스와 태양광 설비 등으로 에너지 절감 및 자립에 초점을 맞춘 보봉지구는 친환경 생태마을로 조성돼 현재 5천5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주택은 전기 판매로 가구당 매달 250유로(32만 원가량)의 순이익을 내고 있으며 가축 분뇨나 곡물, 음식물쓰레기를 활용해 바이오 에너지도 생성해 낸다.

 보봉지구 내에는 자동차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수의 가정은 자동차가 없으며, 개인 차량이 있더라도 주거단지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는 그린시티 호텔이 있는데, 해당 건물 외벽은 넝쿨식물로 덮여 있다. 낮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밤에는 보온 역할을 하는 친환경 냉난방 시설이다.

 앞서 원전 반대운동의 선두 주자로 소개했던 랄프 디쉬도 보봉지구 조성 초기부터 주민들과 함께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든 건물이자 이곳의 상징이기도 한 헬리오트롭(helio+trop)에 살고 있다. 헬리오트롭은 건물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태양 방향에 따라 움직이면서 에너지 집적이 잘 되도록 만든 원통형 주택으로 1994년 랄프 디쉬가 직접 설계했다. 태양광 패널에서는 자체 에너지 소비량의 5배가 넘는 전력이 생산된다. 이 건물을 짓는 데 60만 유로(약 10억 원)가 들었지만 연간 7천만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 그린시티 사업, 시 예산 받지만 정치 관여 없이 지속 추진

▲ 프라이부르크역 인근에 마련된 3층 규모의 자전거 보관소.
"지금 얘기를 나누는 한국의 취재진처럼 월마다 150여 명이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합니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빼앗아 갈까 봐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노하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져가길 원합니다." 30년 전부터 그린시티 업무를 보고 있다는 베른트 달만(Bernd Dallmann·65)프라이부르크 경제·관광공사(FWTM, Management and Marketing for the City of Freiburg) 대표의 말이다.

FWTM은 프라이부르크시에서 예산 전액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곳으로 ‘그린시티’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30년 전인 35세부터 그린시티 일을 시작했던 베른트 달만 대표는 그린시티 사업을 길게 봐야 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프라이부르크가 다른 세계의 환경도시와 다른 점은 30여 년 동안 그린시티의 아이디어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단기에 성과를 바라기보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FWTM은 시민들이 원하는 사업이 무엇인지 아이템을 찾는 단체이기에 정치와는 관련이 없다"며 "시장이 5년마다 바뀌지만 정책 방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FWTM은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주정차 위반 시 큰 벌금을 부과하고, 불법 주차가 적발되면 바로 견인하는 강경책을 실시했다. 주민 반발이 있을 법도 하지만 시민들 스스로가 그린시티를 원하고 있기에 큰 불만이 제기된 적은 없다는 설명이다.

▲ 프라이부르크 경제·관광공사 베른트 달만 대표
"올해 봄에 한국의 수원에 가서 자매결연을 맺고 왔습니다. 수원시가 지속적으로 제안과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감동했죠. 전 세계적으로 그린시티가 10여 곳에 불과한데 한국인들의 끈기와 열정이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프라이부르크에 적용된 정책을 한국에 똑같이 할 수는 없습니다. 각 도시마다 그들만의 생각이나 정책이 있고, 지역 환경도 다릅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모인다면 그린시티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끝으로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100%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태양광과 풍력, 수력, 바이오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신재생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새로운 대중교통 루트를 만들어 버스나 트램, 자전거 이용을 높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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