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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끼니로 음식을 먹는다는 본래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영양 공급이라는 일차원적인 의미보다는 가족을 비롯한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식사를 통해 유대감 형성 및 다양한 사회활동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그 뿐인가? 다채로운 맛을 느끼는 먹는 즐거움은 인간의 본질적 욕구 중 하나다. 또한 음식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며 신뢰와 사랑을 회복시키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바베트의 만찬’은 제목에서도 묻어나듯 저녁 식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어떤 사연을 지니고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자.

19세기 말 덴마크의 작은 바닷가 마을. 이곳은 엄격한 청교도적 교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곳으로 마을의 목사는 주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목사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는데, 자매인 마틸드와 필리프는 세속적인 생활을 멀리하고 오로지 아버지의 목회활동만을 성심껏 도왔다. 한때 신도 수가 최고조에 이른 배경에는 목사가 전하는 교리보다 자매의 미모가 한몫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숱한 마을 청년들이 나름의 진실한 사랑을 전했지만 자매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버지인 목사를 대신해 나이 든 두 자매가 교회를 지키며 여전히 금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난한 처지에도 늘 자신보다 더 낮은 곳을 돌보며 살아가는 이들 앞에 어느 날 바베트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자가 찾아온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쫓기듯 망명 온 바베트는 갈 곳이 없었고, 딱한 사정의 그녀를 자매가 받아주면서 세 사람은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렇게 익숙한 삶의 시간이 흐른 지 12년째. 바베트가 1만 프랑이라는 거금의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어려운 시절 자신을 받아준 자매에게 보답하는 마음을 담에 바베트는 프랑스식 만찬을 대접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음식에 소금으로 간 맞추는 것조차 쾌락이라 생각해 금기시 해 온 자매는 화려한 프랑스식 식재료를 본 후 정신이 아뜩해진다. 과연 이들의 저녁 식사는 무사히 치러질 수 있을까?

이사크 디네센의 소설 「바베트의 만찬」을 영화화한 가브리엘 악셀 감독의 작품에서 만찬은 삶의 온기를 넣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오로지 내세에 하느님의 나라에 가서 충만한 삶을 살고자 현실에서의 욕망과 즐거움을 억제하는 삶을 긍정해 온 금욕적인 자매와 마을 사람들은 사실 행복하지 않았다. 자매는 연애와 사랑의 감정을 거부한 채 미혼으로 늙었고, 마을 사람들 또한 늘 자신들을 억눌러 온 금욕에 대한 스트레스로 서로를 은근히 힐난하거나 마음을 닫고 살기 일쑤였다. 그러나 바베트가 차려 논 따뜻하고 달콤한 만찬 앞에서 그들의 마음은 사르르 녹아내렸다. 포도주 한 모금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으며, 정성 어린 요리 한 입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함께하는 식사를 통해 오랜 시간 잊고 지낸 신뢰와 사랑을 이들은 회복할 수 있었다.

‘바베트의 만찬’은 영화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연말, 화려한 요리는 아니더라도 정을 나눌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함께 둘러앉아 나누는 따뜻한 한 끼 식사가 지난 한 해 지치고 힘들었던 서로의 마음에 잔잔한 위로가 돼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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