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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대통령의 꿈,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을 때 꽤 많이 나오는 대답이다. 나라를 잘 만들어 보겠다는 뜻을 가진 경우도 많겠으나 아무래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말처럼 꿀직업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비아냥거림도 만만치가 않다. "대통령은 일어나시면 그게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다." 이런 김 실장의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서 태반주사를 맞든 미용시술을 하든 아니면 온종일 TV드라마를 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 국가 지도자의 덕목은 그렇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리더십의 고전으로 전해오는 4가지 덕목이 있다. 우선 투기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페리클레스의 지적부터 살펴보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식견, 그 식견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소통능력,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재물에 대한 무욕(無慾).’ 식견, 소통능력, 애국심, 청렴이라는 것인데 다산 정약용의 통치자 자질론과 통하는 점이 많다. 그는 "백성이 편히 잘 살려면 최소한 통치자가 청렴하고 도덕성을 지녀야 한다. 아무리 좋은 능력이 있을지라도 도덕성을 가진 후라야 전문성도 개혁성도 가치가 있다"고 했다. 「논어」에서 한마디 거든다. ‘그 몸이 올바르면 명령함이 없어도 이루어지며(其身正不命而行), 그 몸이 올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不正雖命不從)’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지도자는 국민에게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한다."

 최근 우리가 처한 상황을 들여다본 듯한 학술연구 역시 동서양 공히 나온다. 미국 뉴욕주립대 세스 스페인 교수는 ‘스트레스, 웰빙, 그리고 리더십의 어두운 면’이라는 논문에서 나쁜 지도자의 종류를 ‘사악’과 ‘무능’ 두 가지로 분류했다. 사악한 지도자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형(型), 자아에 도취하는 형,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아랑곳하지 않는 형’이 있고, 무능한 지도자는 ‘국민에게 나쁜 일을 하려는 게 아닌데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격의 결함 때문에 일을 잘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대(漢代)의 유향이란 학자는 ‘5한(五寒)’이라 하여 나라와 백성을 얼어 죽게 하는 다섯 가지 중대한 문제를 지적했었다.

 첫째는 ‘정외(政外)’, 정치가 초점을 빗나갔다. 둘째는 ‘기밀누설’, 국정의 기밀이 새나가면 나라가 흔들린다. 셋째 ‘여려(女礪)’, 礪란 거친 숫돌이다. 여자가 거세진다는 뜻이다. 넷째는 ‘경사(卿士)를 예우하지 않는 것’, 장관 등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소홀히 대하면 정사는 낭패한다. 다섯째 ‘내치(內治)를 못하고 바깥일에 골몰한다’ 즉 국내의 다스림을 제대로 못하면서 이를 감추려고 밖에 나가 우쭐거리거나 문제를 일으켜 덮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그동안 행적을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그들의 지적에 딱 들어맞는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행정 각부의 장관들에 대해 한 행동이나 최순실이라는 거친 숫돌로 마구 휘두른 국정농단의 모습을 곰곰이 살펴보면 섬뜩할 정도로 예견된 바와 같다. 역사의 원리원칙은 언제나 가혹하고 격렬하다.

철학자 산타야나는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고 했다. 역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더라도 그걸 덮어두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싱귤러 포인트’라고 한다. 예를 들어 플라스크로 물을 끓일 때 가스에 점화하면 한동안 아무런 변화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부글부글 거품이 나기 시작하고 김이 나온다. 이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비등점에 달해 끓는 물이 넘쳐나거나 플라스크가 파열한다. 이런 위험점이라고 할까, 분기점 같은 것을 싱귤러 포인트라고 한다. ‘뭐 걱정할 것 없어’하고 내버려두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에 싱귤러 포인트를 지나 단숨에 파멸의 길로 치달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나라를 잘 만들어 보겠다는 진지함에서 대답했건,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꿀직업이기에 해보고 싶다고 했건 간에 대통령의 꿈은 ‘염치(廉恥)’에서 강조돼야 한다는 점이다. 염(廉)은 무사(無私), 이를 알게 될 때 반사회적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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