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은 소수 국민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지도자들은 국민이 겪는 현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대통령이라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약자의 사연을 들으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3-유치원.jpg
2016년 12월 15일 인천시 서구 호정어린이집 7세 반 교실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작은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은 저마다 스케치북에 색깔을 칠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능숙한 솜씨로 가위질을 하던 보육교사 김빛나(27·검단동)씨는 희망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힘주어 말했다.

김 씨는 "하루 8시간·주5일 근무가 보편화됐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며 말뿐인 정책이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음을 꼬집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 역시 적정 근로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김 씨의 일과는 오전 7시 반에 시작해 오후 7시 반에 끝난다. 교실 정리를 하고 나면 8시부터 등원하는 아이들을 맞아야 한다. 오전에는 책 읽어 주기·동요 부르기와 같은 실내 활동이 진행된다. 점심을 챙겨 주고 몸을 움직여 야외 활동을 다녀오면 5시 반이다. 아이들이 귀가한 이후에는 다음 날 수업 준비와 일지 작성으로 분주하다. 그렇게 숨 돌릴 틈 없이 12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된다. 사립어린이집의 경우 방학도 일주일에 그쳐 고충이 더 크다. 그 중에서도 하루·이틀은 당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고 장기간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과중한 업무는 교사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3.jpg
김 씨는 "지금도 모든 교사들이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대하지만, 8시간 근무로 여유가 생기면 한 명, 한 명에게 더 신경을 써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육교사를 꿈꿔 왔고 아동학과 졸업 후 바로 취업해 줄곧 근무하고 있지만 낮은 임금은 여전히 고민거리다. 김 씨는 매달 처우개선비와 어린이집 급여를 합친 160여만 원을 받는다. 그나마도 구에서 나오는 처우개선비는 지급이 늦어져 곤란할 때가 많다. 그를 비롯한 대다수의 보육교사들은 과중한 업무량과 저임금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래도 김 씨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진심을 의심받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가장 속상한 일로 ‘CCTV 학대사건’을 꼽으며, 인천 지역 전체 보육교사들이 오해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아동학대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면서도 "일부 교사의 악행을 보고 전체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어려운 여건에도 보육교사들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아이들의 웃음 때문이다. 업무에 치이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면 피곤이 사라진다.

3-유치원3.jpg
김 씨 역시 "힘들지만 보육교사가 되기를 잘했다"고 자부한다. 그는 "반 친구들이 가끔 ‘선생님 때문에 행복해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 온다"며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마음이 느껴져 교사로서 보람이 있다"며 웃어 보였다.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홀로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줄곧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던 그가 처음으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매일 반 아이들의 모습을 수십 장씩 카메라에 담으면서도 사진을 찍히는 데는 익숙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종일 누군가를 돌봐야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김 씨의 새해 소망은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책도 많이 읽고 좋아하는 여행도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쌓을 생각이다.

김 씨는 "2015년 1월부터 한 달에 책 두 권씩을 읽기로 다짐했는데 바쁜 나머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며 "새해에는 지식을 살찌워 지금보다 발전한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홍봄 인턴기자 spring@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