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가 되고 싶다"는 세 살배기 나영이는 7남매(3남4녀) 중 막내다. 나영이네 가족의 새해 소망은 ‘화장실 2개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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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도움으로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던 나영이네는 ‘재개발’ 때문에 부랴부랴 지금 사는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지난해 12월 17일 저녁. 나영이네 집 가스레인지에는 큰 냄비 2개에 김치찌개와 카레가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었다. 나영이 가족은 할머니 최순자(68)씨, 아버지 박종태(47)씨, 어머니 최정선(36)씨와 6명의 언니·오빠들까지 10명이다. 한 번 식사를 하려면 15인분 정도의 밥과 반찬을 준비해야 한다. 한 달에 30∼40㎏의 쌀을 소비하고 매일 1∼2회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 대식구다.

이 식구들이 북적이며 살고 있는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의 빌라는 고작 44㎡밖에 되질 않는다. 할머니가 걸음이 편치 않아 1층을 구하느라 아버지가 두세 달을 돌아다니며 겨우 구한 집이다. 지난해 11월 청천파출소 근처에서 산곡동 성당 쪽으로 이사했다.

다섯째 세훈(8)이는 "옛날 집에서는 일요일에 다같이 고기 구워 먹고 뛰어놀고 했는데 여기 와서는 형들이랑 휴대전화 게임하고 TV 보는 것밖에 놀 게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사한 지 한 달 정도됐지만 베란다에는 아직 풀지 못한 짐이 많다. 둘 곳이 없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고 있다.

박 씨는 "큰 면적의 아파트는 비싼 가격에 엄두를 못 내 가족들이 원하는 단독주택 2∼3곳을 찾아가 봤지만 집주인들이 LH 전세자금대출 저당권 설정을 해 주길 꺼려 해 계약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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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의 주거 걱정은 지난해 추석 때부터 이어졌다. 재개발로 급히 이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땅한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방문했던 유정복 인천시장에게도 고민을 털어놨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박 씨는 하루 250∼300개의 택배를 배송하기 위해 오전 6시부터 오후 9∼10시까지 인천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아직 어린아이들 때문에 맞벌이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어머니 최 씨는 항상 남편을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 화∼수요일 저녁에는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뒤 남편과 함께 택배를 나른다.

올해 특성화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맏딸 민정(16)이는 휴대전화를 바꾸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식구가 많다 보니 매달 통신비 내는 것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 중 맏딸과 맏아들만 휴대전화가 있다 보니 아빠가 들어오면 아이들은 휴대전화 ‘쟁탈전’을 벌인다.

제빵사가 꿈인 둘째 장훈(15)이는 "새해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나중에 가족들에게도 빵값을 받겠다"고 말해 민정이에게 면박을 당했다. 그제서야 맘을 바꾸자 가족들 모두 한바탕 웃었다.

새해 ‘한글 모두 깨우치기’가 목표인 현지(6)는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눈물만 글썽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미술교사가 되겠다는 셋째 민지(12)는 새해 가족들을 위한 종이 공예품을 만들어 선물하겠다고 목표를 정했다. 외관만 보고 차종을 맞히는 넷째 재훈(11)이는 ‘흥미’를 살려 자동차정비사가 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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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아이들의 꿈을 펼치게 해 주고 싶은 박 씨 부부는 점점 걱정이 늘고 있다. 공부방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잘 공간도 부족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박 씨 부부는 최근 TV를 보면서 대통령이 바뀌어 아이들에게 더 나은 생활환경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씨는 "수입, 아이들 나이 같은 것을 따져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주는데, 그런 것 상관 없이 다둥이가족 모두에게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며 "새 대통령은 이런 부분에 있어 정확한 판단과 혜안을 갖고 다둥이가족들이 웃을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애들 둘이 지적장애 2·3급인데 치료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없고 학교시설도 열악하다"며 "새해에는 정부가 이런 세세한 부분을 챙겨 주길 바란다"고 했다. 시어머니 최 씨는 "연말연시, 명절 때만 반짝 지원해 주는데 1년 열두 달 안정된 지원을 해 줘 아이들 키우는 데 마음 졸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사진=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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