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요? 저는 정치 잘 모릅니다. 다만 현 시국이 좋지 않고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정치하시는 높은 분들에게 바라는 큰 것이 있겠습니까?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바르고 정직하게 일을 해서 다시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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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달 9일 의왕시청 내에서 구두를 닦는 김정렬(57)씨는 현 시국 상황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 씨는 "높은 지위에는 높은 책임이 따릅니다. 내가 구두를 닦다가 실수를 하면 손님 한 명에게 피해를 주지만, 대통령이 실수를 하면 국민 전체가 피해를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은 절대 실수를 해서는 안 됩니다"고 말했다.

2급 청각장애인인 김 씨는 13살 때 부모와 함께 고향인 전라남도 해남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김 씨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손재주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성인이 된 후 가방 공장에 취직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3년 후 김 씨는 가방 공장을 그만두고 24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고 배우고 싶은데 미대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림을 그리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일본화를 배우게 됐습니다." 이후 김 씨는 한 일본화 작가의 보조작가로서 15년 동안 일본화를 그렸다고 한다.

김 씨가 구두닦이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다. "IMF가 터지면서 일감이 급격히 줄었죠. 같이 일하던 다른 보조작가들이 나가도 저는 3개월 동안 월급도 안 받고 버텼지만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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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한 농아인에게서 구두닦이를 배우기 시작한 김 씨는 서울중앙문화센터 빌딩에서 구두닦이를 시작했고, 2015년 6월부터 의왕시청 내에 자리를 잡았다.

"구두닦이를 직업으로 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IMF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구두닦이를 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현 정치 상황을 묻자 김 씨는 박 대통령의 탄핵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박 대통령이 탄핵이 돼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탄핵된 것이 안타깝다"며 "박 대통령도 큰 잘못을 했고, 청와대나 국회에 계신 높으신 분들도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호가호위하는 것을 알면서도 직언하지 않고 오히려 머리를 조아려 부귀영화를 누리려 했기 때문"이라며 부연했다.

그는 이어 "높은 지위와 직책에는 그만큼의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데 높은 지위의 권력만 가지려 하고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며 "20여 년 전 IMF 때에도 수많은 가장들이 실직을 하고 국민들이 피해를 봤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정이 농단 당했고 국민의 혈세가 낭비됐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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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통령선거에서 어떤 대통령이 당선됐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김 씨는 "상식이 통하는, 상식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 우리나라는 상식이 무너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됐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그동안 정윤회 문건이나 문고리 3인방 등 그동안 비선실세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제기됐는데도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들 유야무야 넘긴 것이 결국 대통령 탄핵까지 오게 됐다"며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사람, 자신의 권한만큼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새해 소망을 묻자 김 씨는 "새해 소망이요? 특별한 새해 소망은 없습니다. 그저 지금처럼 큰일 없이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게 새해 소망"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의왕=윤승재 기자 ysj@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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