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우리나라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지금과 같이 국가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가 있었다. 그때도 우리 국민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했다. 분명 이번에도 우리는 이 총체적 난국을 분명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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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첫 한파가 찾아왔던 2016년 12월 15일 새벽. 칠흑 같은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인천시 동구 화도진공원 주변에 이날도 빗자루와 노란색 바구니가 장착된 수레를 끌고 뼛속까지 에는 차디찬 새벽 공기에도 묵묵히 자신이 맡은 도로 청소를 쉼 없이 하고 있는 환경미화원 최상묵(50)씨 역시 나라를 먼저 걱정하며 말을 시작했다.

최 씨는 "어허! 우리 같이 청소하는 사람을 이렇게 취재 나온 기자분이 내가 보기엔 더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소"라며 오히려 취재를 나온 기자를 걱정했다.

최 씨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지 벌써 16년 차다. 그 역시 이 일을 하게 된 사연이 남다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5년 도장설비업체에 다니던 그는 어려운 형편에도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행복한 삶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2년 후인 1997년 우리나라에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그가 다니던 회사는 파산에 이르렀고, 최 씨는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당시 그에게는 아내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갓 돌 지난 딸이 있었고, IMF 못지않은 경제적 위기가 들이닥치면서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앞이 캄캄했다.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용직부터 안 해 본 일이 없었던 그는 2001년 환경미화원 일을 처음 접하게 됐다. 당시 ‘청소부’라는 직업으로 통했던 환경미화원 일에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이런저런 것 따져 가면서 일을 골라 할 처지가 아니었던 최 씨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이 혹시나 아빠로 인해 기가 죽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년간 자신이 하는 일을 숨겼다. 그래도 언제까지 숨길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큰맘 먹고 자신이 하는 일을 이야기했고, 다행히 아들이 어린 나이에도 흔쾌히 이해해 줘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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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보낸 최 씨에게도 화창한 봄날이 찾아왔다. 인천시 동구청 소속의 1년 단위 근로계약직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3년 노무현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침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정년 보장의 고정적인 수입으로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최 씨는 매일 새벽 4시에 출근해 오전 5~9시, 오후 1~5시 등 하루 두 차례 동구 화도진공원에서 인천만석초교로 이어지는 도로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 그는 겨울보다 낙엽이 많이 떨어지는 가을철이 청소하기 더 힘들다고 한다. 그때는 리어카를 끌고 나와도 모자랄 정도로 치워야 할 낙엽과 쓰레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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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닐 때 지방과 외국을 오가는 잦은 출장으로 아들이 태어날 때 아내와 함께해 주지 못할 정도로 바빴던 시절도 힘들었지만, IMF 외환위기로 인해 가족이 고통받을 때는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는 최 씨는 "요즘은 그 고통의 나날들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매우 행복하다"면서도 "20년 주기로 국가의 위기가 찾아오는지 몰라도, 요즘 정국이 너무 어지러워 많이 아쉽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주인도 모르는 지폐를 줍기도 했고, 또 지갑을 주워 경찰서에 갖다 주는 일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다들 카드를 사용해서 그런지 지폐를 줍는 일이 거의 없을 뿐더러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은 대부분 쓰레기들뿐"이라며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네 정치인들도 부디 바닥에 정신을 버리지 말고, 제발 국민들을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다녔으면 좋겠다"며 그동안의 에피소드와 함께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 역시 새해 소망을 잊지 않았다. "새해 큰 바람은 없다"면서도 "부디 우리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1년을 보냈으면 좋겠다. 앞으로 정년이 7~8년 정도 남았는데 그때까지 무탈하게 이 일을 계속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요즘 환경미화원을 용역으로 대체한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정국이 어수선하다"며 "국가가 빨리 안정돼 2017년도에는 제발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대통령이 나왔으면 한다"며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최유탁 기자 cyt@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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