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택시를 ‘민심의 바로미터’,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각계각층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심을 알려면 택시기사를 하라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해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로 어느 때보다 시국이 어수선한 이때, 새해를 맞아 의정부에서 10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강귀선(60)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4-의정부 택시기사.jpg
강 씨는 택시 차고지에서 근무 교대를 기다리던 중 손님들을 태우며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만큼 오늘은 자신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보통 각양각색의 손님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어. 취업 걱정하는 대학생들부터 자식 걱정인 가장까지. 그런데 요즘은 라디오에서 국정 농단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하나 같이 혀를 차."

강 씨는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국회나 청와대에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손님들 얼굴만 보면 알 수 있는 게 사회 분위기라고 한다. "원래 나라가 잘 돌아가도 본인만의 걱정은 있는 법이잖아. 여기에 나라까지 이 모양이니까 손님들 표정이 좋을 리 없지."

1984년 의정부YMCA 수영 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강 씨는 1998년 전라북도 정읍에 새 지부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도전을 하고 싶어 자진해서 내려가 사회체육부장을 지냈다. 택시 일도 그렇고, 당시의 선택은 본인의 역마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하다 2003년 의정부로 돌아와 수영 강사 자리를 알아봤지만 나이 먹은 자신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 택한 일이 바로 ‘택시기사’다. 의정부 토박이인지라 간혹 지인들을 태우게 되는데, 처음엔 반갑기보다는 민망함이 앞섰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택시 일로 자녀들을 대학에도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다며 자부심을 느낀다. 어떤 교통수단도 택시만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4.jpg
"한 번은 밤 12시에 광주로 가자는 정장 차림의 40대 남자를 태웠어. 난 당연히 경기도 광주인 줄 알았는데 전라도 광주더라고. 4시간 동안 내려가며 아무런 말도 못 붙였어. 통화하는 걸 들어보니까 아버지가 위독하셨던 거야."

강 씨는 택시 일을 하며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때라고 말한다. "목적지까지 잘 태워 줘서 고맙다고 1천 원이라도 더 주시려는 분들이 있어.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배려와 인정이 무척 고마운 거야."

하지만 시국이 어수선해서인지 예전보다 말도 잘 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손님이 더 많다고 전했다. "본인이 여유가 있어야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게 아닌 거야. 이건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정치인들이 반성해야 해."

그는 올해 어떤 대통령이 됐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지금으로선 누가 와도 크게 상황이 변하기 힘들어 보인다며 회의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단 한 명의 책임도 아니야. 단 한 명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한 시스템과 정치문화가 문제인 거야. 그래서 올해는 진짜 변혁을 일으키는 대통령이 나와야 해."

14-의정부 택시기사2.jpg
그는 광화문 대규모 집회 이야기를 꺼내며 그래도 이번 일을 계기로 오히려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이제 시작이라고 봐. 국민들이 문제점을 알았으니 다시 한 표, 한 표에 더 신중해질거야. 사회 분위기부터 우리가 직접 바꿔 가야 하는 거야."

응급처치강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강 씨는 요즘 들어 본인과 주위 사람들의 건강이 가장 큰 관심사다. 그는 택시에 탄 손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게 기사의 몫이라며 동료들에게 심폐소생술을 가르치고 동창들과는 산악회를 꾸려 한 달에 한 번씩 꼭 등산에 나선다. 그렇게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그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다.

"올해 우리 손자가 태어나. 다음 세대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 서민들 편에 서서 생각하며 하나하나 바꿔 나갈 수 있는 리더십 있는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

의정부=신기호 기자 skh@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키워드

#강귀선 씨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