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제로 글을 풀어 나가야 할지 참 많은 고민에 쌓였다. 날짜가 날짜인 만큼 부담이 컸던 탓이리라. 단순하게 단어를 정했지만, 너무도 평범한 내용들로 가득 차면 어떻게 하나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그 ‘평범’에 주목이 됐다.

 지난 연말을 보내며 내내 든 느낌이 연말이 연말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비단 나뿐 아니라 지인들과도 같은 대화를 나눴다. 크리스마스에는 캐럴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고(믿는 종교가 아닌 탓도 있음을 인정), 그 흔한 방송 수상식도 챙겨보지 못했으며, 시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통상 연말연시는 무언의 들뜸에 약간 상기돼야 하는 것이거늘, 그렇지 않은 것이다. 다른 때와 비교했을 때 되레 너무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탄핵정국은 계속되고 있으며, 2년 9개월여 전의 7시간은 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울리고 있다. 슬픔을 넘어 분노마저 일게 한다. 간혹 노출되는 수사결과와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후퇴했던 지를 보여준다. 평범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개인사를 돌아봤다. 물론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의 거사(巨事)를 치른 경험은 없지만 크고 작은 충격, ‘내 인생에 이런 일을 겪다니…’하는 식의 일화들이 꽤 있다. 인생사,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평범치만은 않았다(이에 대한 논쟁은 아마도 한국 남자들을 빗대어 ‘해병대가 힘들다 공수부대가 힘들다’는 식의 소모적인 논쟁, 즉 방위를 나와도 군대는 다 힘들다는 식의 귀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어찌됐든, 평범하게 사는 것이 참 어렵다는 걸 조금 살다 보니 깨닫게 됐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결혼 전 장인 장모에게 승낙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의 다짐을 "아주 잘 살게까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평범한 정도의 삶까지는 책임질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돌아 온 답은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이지 아나"라는 것이었단다. 정유년(丁酉年), 갑자기 바람이 생겼다. 이제부터라도 좀 평범하게 살고 싶다. 문제는 어떤 게 평범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사는 게 재밌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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