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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이 시대, 닭의 울음소리 흔히 듣지 못한다 해도 새 아침은 어디선가 그가 홰를 치며 낸 상서로운 울음소리에 의해 밝았으리라. 필경, 저문 해의 암울과 좌절과 분노와 비탄을 그의 새벽 목청은 진정 후련하고 말끔하게 씻어 주리라.

 무릇 닭은 하루의 시작을 표상하는 동물로 여긴다. 그의 울음소리가 미명(未明)을 걷고 태양을 들어 올려 날을 밝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닭은 인간 삶의 밝아옴, 즉 시원(始原)과도 상징적으로 통한다.

 "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이렇게 이육사(李陸史)의 시 ‘광야’의 첫 행이 그것을 웅변한다. ‘하늘이 처음 열리던’ 그 개벽의 순간에는 닭 우는 소리가 없음으로 해서 사람도 없었음을 이육사는 말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랜 시간 인간과 닭이 함께해 왔음을 너끈히 은유하는 말인가. 닭이 먼저 나는 법을 잊어 인간과 함께 하게 되었는지, 인간을 따르느라 나는 법을 버렸는지, 그것은 모른다.

 아무튼 닭은 인간과 오랜 세월을 가까이 한 동물이어서 그를 하찮게 비하하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매우 중하게 여기는 언어 또한 수다하다. 비유로 한 말이지만 공자는 닭을 그리 대단치 않게 생각했던 듯하다. 논어 양화편(陽貨篇)에,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느냐?(割鷄焉用牛刀)"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 말은 공자가, 제자인 자유(子游)가 읍재로 있던 무성(武城)에 갔을 때, 흘러나오는 현악과 노랫소리를 듣고 한 말인데, 작은 고을에서 무슨 예악(禮樂)이 필요하냐는 뜻이었다. 격에 안 맞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자유는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공자가 전에 한 말을 들추어낸다. 이에 공자는 다른 제자들에게 "얘들아, 언(偃)의 말이 옳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이니라." 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애정과 군자다움을 읽을 수 있다.

 닭과 관련한 비유는 장자 외편(外篇) 달생(達生)에도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 같다.(望之似木鷄矣)"는 말인데, 싸움닭을 기르는 과정의 우화이다. ‘훈련과 수양을 통해 다른 닭이 아무리 울어도 못들은 척, 마치 나무닭처럼 꿈쩍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면, 다른 닭이 감히 대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먼저 도망칠 것’이라는 기성자의 대답 중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나무닭은 ‘싸우지 않고도 천하의 닭을 이기는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말로 장자의 독특한 비유가 눈길을 끈다. 장자가 살던 시기에도 닭싸움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공자, 장자의 이야기 때문에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다. 꼭 12년 전 을유년(乙酉年) 새해에 본란에 적었던 닭에 대한 대표적인 상찬의 구절을 옮겨 본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원일(正月元日)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닭은 당당히 액을 막는 수호 초복(守護招福)의 동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예로부터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울음소리가 귀신을 쫓는 벽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길한 동물로 생각해 왔다. 닭이 제때에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러한 닭을 상서롭고 덕(德)이 있는 날짐승이라 하여 이른바 덕금(德禽)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그러나 ‘큰 덕’자까지 붙여 부르는 닭에게 지난해 참으로 참혹한 일이 생겼다. AI라는 변고가 그것이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수의 덕금이 그냥 무참하게 땅에 묻힌 것이다. 우리 인간의 방심과 우매가 이런 재해를 불렀으니 이러고도 정유년을 어찌 의미 있게 맞으랴. 오히려 닭의 원성이 새해, 새벽을 밝히지나 않을지. 물론 우리에게도 덕금의 희생 이상으로 고난이 있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다 파묻어 버리고 싶을 만큼 통탄스러운 일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다. 탄핵의 결말이 남아 있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고(思考), 새로운 삶의 설계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해서 기원하노니, 지하의 덕금이여, 어서 다시 횃대에 오르라. 저 저문 해의 암울과 좌절과 분노와 비탄을 이 새벽 너의 우렁찬 울음소리로 후련하고 말끔하게 일신해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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