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법정(글씨)·현장(엮음)/책읽는섬/192쪽/1만2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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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가난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 청빈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삶의 미덕입니다. 소유물을 최소한으로 줄여 스스로를 우주적 생명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맑은 가난, 청빈입니다."

 무소유를 실천하다 2010년 길상사에서 78세의 나이로 입적한 법정 스님이 생전에 한 말이다. 이는 1998년 2월 24일 축성 100주년을 맞은 명동성당 앞에서 한 강론 중 하나이다. 법정 스님의 이 강론은 이해인 수녀가 따로 녹음을 한 CD를 보관해 최근 빛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지난 3일 출간된 책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에는 법정 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발자취와 이야기 등이 나온다. 법정 스님이 직접 쓴 편지 등도 대원사 회주 및 아시아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현장 스님이 찾아내 함께 엮어냈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 중 몇 가지를 마음을 열고 들어보자.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청빈의 덕이 자랍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경제적인 결핍 때문이 아닙니다. 따뜻한 가슴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얼마나 친절했느냐, 얼마나 따뜻했느냐 편)』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에 달려 있습니다.(필요와 욕망의 차이를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편)』

 『가난 속에서도 따뜻하고 순진한 어린이의 그 마음이 바로 천국일 것이네. 그래서 어린이를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겠지.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삼등하고 싶은 그 마음 고이 간직되었으면 좋겠네.(어린이의 마음이 천국일세 편)』

 진정한 행복은 가난을 통해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말씀들이 많다.

 또 법정 스님의 행적 중 처음으로 알려지는 사실들이 꽤 나온다. 엮은이 현장 스님은 종교 간 교류의 모범적인 활동을 보인 불가의 승려로 법정 스님을 꼽는다. 법정 스님이 크리스천아카데미의 운영위원과 함석헌 선생이 펴낸 잡지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사실 등을 새롭게 알아냈기 때문이다.

 종교를 떠나서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법정 스님의 과거 행적도 나온다. 한 천주교 신자의 고백을 보면, 법정 스님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대학 등록금을 대준 덕분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법정 스님을 찾아오는 독자 팬 중에는 유독 천주교 신자가 많았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천불교 신자’라고 지칭했을 정도라는 내용이다.

변사기담  
양진채/강/312쪽/1만4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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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 양진채의 첫 장편소설이다. 2012년 출간된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 이후 5년 만이다. 인천 출신인 작가가 고향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고 말했듯이 「변사기담」은 인천을 무대로 삼고 있다. 자유공원, 제물포구락부, 조계지, 웃터골, 인천각, 알렌 별장, 대불호텔, 인천상륙작전 상륙 지점 등 인천의 역사적 명소들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이 시대 마지막 변사인 윤기담이다. 변사가 대접받던 과거 시절에 기녀 묘화와의 사랑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소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변사의 연행을 읽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다른 이야기 축에 기담의 증손자인 정환이 등장한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몸의 중심
정세훈/삶창/132쪽/8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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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민예총 정세훈 이사장의 여덟 번째 시집 「몸의 중심」은 한마디로 노동시집이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적잖이 소개되고 있다.

소년 때부터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1989년 문단에 등단한 그가 에나멜 동선 제조 공장에서 일했던 탓에 진폐환자로 고생했을 정도로 누구보다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치열한 사유를 해 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몸의 중심’은 바로 ‘아픈 곳’이라며 이를 어루만져 주는 일이 바로 이번 시집의 과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표시 ‘몸의 중심’을 읊어 본다.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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