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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스마트폰, TV 등 영상매체가 발달하면서 활자 미디어는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종이를 넘겨 가며 신문을 읽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주요 뉴스를 보는 일이 더욱 익숙해졌으며, 디지털 환경에서 구독 가능한 전자책 시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전자책 시장이 비록 성장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국민 전체의 독서율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2015년 우리나라 성인 3명 중 1명은 아예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조사될 만큼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를 방증하듯 새해 시작부터 국내 대형 서적도매상의 부도 소식은 출판계의 불황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해마다 감소하는 독서율과 독서량으로 어쩌면 책이 사라져 버린 미래와 조우할 날이 공상과학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화씨 451’은 책을 소유하는 것조차 범죄가 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1966년 작품이다.

 몬태그는 몸에 밴 등유 향과 탄내를 향수로 여길 만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의 직업은 방화수로 불을 끄는 사람이 아니라 불을 내는 사람이다. 불법적인 책이 발견된 곳은 어디나 출동해 신속·정확한 동작으로 책을 모조리 불태운다. 당연히 그의 집에는 책뿐만 아니라 어떠한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몬태그의 아내는 온종일 TV만을 시청할 뿐이다. TV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뉴스도, 생활정보도, 취미도, 유흥거리도 모두 다 TV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몬태그는 클라리세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니듯 호기심과 생동감이 넘쳤다. 몬태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던진 마지막 질문이 어째서인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태워 버린 책 중 읽고 싶은 책은 없었나요?" 이후 그는 의문을 갖게 된다. ‘책은 정말 나쁜 것일까, 책은 삶을 불행하게 할까?’ 그는 이런 호기심에 책을 읽기 시작한다. 비밀스럽게 읽은 책을 통해 그간 텅 빈 채 살아갔던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이제 단 한 권의 책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시스템의 통제 아래 안락하게 살아온 삶과 작별을 고한다.

 영화 ‘화씨 451’은 책이 불타는 온도를 뜻하는 제목으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다. 책이 금지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전체주의적 통제에 대한 비판과 책으로 상징되는 정신문화를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서 책이 금지된 사유는 인간에게 불행만을 안겨 주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책은 어떠한 이득도 주지 못한 채 오히려 행복하게 살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금기됐다는 것이다.

 반면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진 TV의 유용성은 찬양된다. 모든 필요한 내용은 TV가 손쉽게 전달한다. 그 내용은 직접적이고 원색적이고 자극적이다. TV를 온종일 보다 두통이 느껴질 때 쯤이면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사람들은 TV 앞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TV에 중독된 사람들은 현실감각을 잃어가며 개별적이며 소중한 기억의 자리조차 TV에게 내어준다.

 이처럼 영화는 말초적인 감각에 휩쓸려 생각 없이 살아가는 가까운 미래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책을 태우던 영화 속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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