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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문 변호사
말을 향해 가고 있다. 두 번째 탄핵심판이지만, 노무현 때와는 다르다. 검찰의 최순실 등에 대한 기소로 불 지펴졌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이 치솟아 올라 있다. 머지않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으로 결말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대한민국은 초유의 정치 상황을 맞게 된다. 새누리당의 분당도 가시화됐다. 26년 만에 4당 체제가 되면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이 들끓고 있다. 대선을 준비하는 후보들의 움직임도 가시권에 와 있다. 문재인, 반기문, 이재명, 박원순, 안희정, 유승민, 안철수 등이 움직이고 있다. 2017년 정치의 계절이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에게 다가온 2017년 정치의 계절에 우리는 정치인에게 무엇을 바랄까? 아니 2017년을 살아가는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인은 어떤 사고를 가진 인물이어야 할까?

 일찍이 체코의 극작가 출신 대통령 하벨은 정치에 대해 정의를 한 바 있다. 정치란 가능의 예술일 수도 있고, 불가능의 예술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특히 가능의 예술의 경우 정치는 투기, 계산, 모의, 뒷거래, 조작이 가능한 경우의 정치를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불가능의 예술의 경우의 정치는 자신과 세계를 향상시키는 예술로서의 정치라고 했다. 정치가 가능의 예술로 전락할 경우, 우리는 정치판의 투기와 계산, 그리고 모의와 뒷거래, 그리고 사실의 조작을 볼 수 있다. 지금의 정치판에서 보여지는 보편적 현상들이다. 허위, 위증, 진실은폐, 농단, 사적 이익추구, 비난, 폄하, 직권남용 등이 난무하는 정치적 소란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체코의 초대 대통령 마시리크는 정치의 의미를 도덕에서 찾았다. 하벨도 정치를 통치의 기술이 아니라 도덕의 실천이라고 갈파했다. ‘정치란 권력의 기술이 아니다. 정치의 출발점은 권력의지도 이데올로기적 전망도 아니다. 도덕적 입장이라고 했다.

 정치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도전, 최선의 도덕만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노력이라고 했다. 완성된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정치를 불가능의 예술이라고 정의를 한 것이다. 타락한 정치를 가능의 정치라고 한다면, 도덕적 이상의 정치를 불가능의 예술이라고 한 이유가 그것이다. 자신과 세계를 향상시키는 예술이라고 말이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 그것이 바로 정치인들이 지향해야 할 정치라고 설파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에서 그와 같은 도덕정치를 해 줄 후보는 있을까? 그 후보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 주권자들인 국민들이 해야 할 과제이다. 국민으로서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벌써부터 지지율 1위 후보를 정치적 이해에 따라 공격한다. 인신공격이 난무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이익 향상을 위한 건설적 대안을 내 놓은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폄하가 횡행한다. 정치인 깎아 내리기 과잉현상이다. 이러한 정치 과잉은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정치 혐오를 가져오고, 정치 불신을 가져오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이제 촛불민심에 의해서 차단될 조짐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의 정치 불신으로 젊은이들이 정치판에서 떠나 있었다. 하지만 정유라의 말 한마디가 젊은이들을 정치판으로 불러들였고, 마침내 그 촛불 민심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이 투표에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과거에는 정략적인 집단적 혐오를 이용해 자당에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하지만 이제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집단혐오에 대해 맞서야 한다.

 ‘베룬다(Berunda)’라는 신비의 새가 있다. 인도신화에 나오는 새이다. 몸은 하나인데, 목과 머리가 두 개인 새다. 두 개의 의식을 갖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베룬다’라는 새는 서로의 의식이 통하면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의식이 통하지 아니해 서로를 증오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난리를 치른다. 결국 각자 상대의 머리를 죽이기 위해 자갈과 독을 삼키는데, 이 경우 고통의 울부짖음을 짓다가 경련을 일으키고는 죽게 된다. 이상적인 도덕정치라는 몸통은 하나이다. 서로의 의식과 사고를 달리하는 정치결사체라고 하더라도, 주권자인 몸통을 위해서는 협의를 통해 서로의 공존을 모색해서 주권자인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로를 헐뜯고 증오하면 그 결과는 어떠할지는 자명해지는 일이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그들에게 달렸다. 주권자인 국민들은 도덕정치를 실현해 낼 후보를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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