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흐릿한 기억이지만 10살 무렵인 듯하다. 친구들과 뛰어 놀다가도 인근 관공서나 학교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그 자리에 멈춰서서 어느 방향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태극기를 향해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애국가가 다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지난 1972년부터 시행됐다가 1989년 폐지된 국기하강식의 풍경이다.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아침저녁 게양할 때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국민들에게 예를 갖추라는 의미로 매일 저녁 5시(동절기)와 6시(하절기)에 시행되던 제도였다.

 하지만 1989년에 강요된 애국심과 국가지상주의 등의 비난이 일자 문공부가 폐지를 결정하게 된다. 이로부터 26년 후인 지난 2015년에는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을 하자 이에 편승해 정부가 태극기 달기 운동과 국기하강식을 추진하려다 국기하강식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 행정자치부가 ‘국민의례’ 방식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해 대통령 훈령 개정으로, 공식 행사·회의에서 순국선열·호국영령 외 묵념은 금지시키기로 해 국민을 통제하고 가르치려는 국가주의적 발상과 강요된 애국심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번 훈령 개정의 핵심은 묵념 대상을 엄격히 제한하고, 애국가를 사실상 기념곡 수준으로 규격화한 것이다. 정부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방법’을 신설해 ‘행사 주최자는 행사 성격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이외에 묵념 대상자를 임의로 추가할 수 없다’고 못박고 ‘묵념은 바른 자세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며 그간 없던 묵념 방식도 구체화했다. 태극기를 사랑하는 마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우리는 애국심이라고 부른다. 애국심은 누군가가 컨트롤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을 붉게 수놓았던 붉은악마의 손에는 모두 하나같이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누가 응원을 할 때는 태극기를 들고 응원을 해야 한다고 얘기해서 들려진 태극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잠재된 애국심이 자연스레 태극기를 손에 들게 만든 것이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의지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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