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난해 10월 이후부터 기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허탈과 분노에다 지방지 기자로서의 한계에서 오는 무력감마저 더해져 수개월째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다.

 모든 언론사와 기자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올인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현실을 수용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게이트의 퍼즐을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나드는 초롱초롱한 ‘민완기자’들의 모습과, 관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나 만지작거리는 초라함이 겹쳐지면 정말 살기 싫을 정도로 스스로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관련 기사를 꼼꼼히 스크린하고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국정농단 게이트의 진실을 향한 첫 번째 기록이라는 「최순실과 예산도둑들」(정창수 외 3명 지음)을 구입해 읽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 애써보지만 허사다.

 ‘나는 나의 위치에서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수없이 주문을 걸어보지만 이마저도 위안이 되진 못한다. 비록 서울 소재 언론사에 비해 모든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방지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특정 언론사 소속 기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기자’라며 애써 스스로를 치켜세웠던 그 자존심은 온데간데없다.

 타 언론사 기자가 제 아무리 경천동지할 특종보도를 하더라도 ‘내가 쓰지 않은 건(못한 건) 기사 가치가 없다’는 ‘오만함’으로 20여 년을 버텨왔지만 이번에는 자존감과 자존심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자신을 학대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기자가 무력감에 빠져 감시의 눈과 귀를 감고 닫을 때 사각지대 어딘가에서 제2, 제3의 최순실이 암약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어서다. 모처럼 무력감을 떨쳐버릴 동기가 부여됐다. 용인시태권도협회에서 석연찮은 일이 감지됐다. 기사로서의 가치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취재과정에서 흐리멍덩한 눈빛만큼은 자취를 감출 수 있을거다. 그래, 그게 지방지 기자가 할 일이다. ‘큰 것’을 쫓지 못한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작은 것’이 커지지 못하게 하는 게 바로 우리의 몫이다. 지방지 기자들이여 파이팅!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