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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時調人
정유년(丁酉年) - 붉은 닭띠의 해, 오덕(五德)을 칭송하고, 액을 쫓으며, 풍요와 다산 속에 새 세상이 펼쳐지는 희망의 시대를 예제서 노래하고 있다. 이에, 본인도 시골에 살 때 흔히 들어보던 ‘닭 울음소리’를 제목으로 한 수 시조를 지어 읊어본다.

 - 울 때가 되어 우는 / 그 울음 참 환하다 // 새벽이 곧 따라 오고 / 밤은 어언 간데없다 // 꼬끼오! / 거룩한 득음 / 두고두고 울리리. -

 골이 깊을수록 산은 더 높아진다. 흔히 시기로 나눌 때 1894년 갑오경장 이후의 시조를 현대시조라 한다. 고시조의 찬란한 이력에 비해 현대시조의 골은 깊었다. 우리 시가의 종가(宗家)임을 자처하면서도 자유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을 만큼 푸대접을 받아왔다. 1920년대 최남선을 필두로 정인보, 이은상, 이병기, 한용운, 이희승의 시조부흥 노력은 1930년대 이후 김상옥, 이호우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점점 시조는 사그라지고 교과서에서 거의 쫓겨났으며, 이른바 시조인들만의 전유물로 떨어지게 됐다. 누구의 잘못인가? 문화교육당국인가, 이런 사태가 오기까지 우리 시조인들(단체)의 책임은 없는가. 시조(時調)는 이름 그대로 그 시대 상황을 글로 지어 읊는 시가다. 일반 주민과 동떨어져 시조인들만이 누리는 특수 유물이 아니다. 국민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지금의 일상사를 시조 한 수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시어가 거칠지는 몰라도, 일본의 하이쿠(俳句)처럼 국민시로 쉽게 지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생활시조’라 하여 일상생활을 곧 시조로 나타내면 좋겠다.

21세기 초연결사회로 들어서는 이즈음, 첫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처럼 그래도 시조의 여명은 오고 있다. 본인이 속한 사단법인 한국시조문학진흥회는 근년 일반주민이 참여하는 시조 낭송회나 백일장을 충주시 수안보에서 수차례 개최한 바 있다. 작년에는 한국시조협회 등 6개 단체와 공동으로 ‘시조진흥을 위한 공청회’를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했다. 그 결과 작년 12월에는 ‘시조’가 들어가는 ‘문학진흥법’ 개정안이 이종배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됐으며, ‘시조 명칭과 형식 통일안’이 선포됐다. 참으로 뜻깊은 행사였다. 이 통일안은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못지않은 선언이라는 평이 있다. 바야흐로 시조진흥운동이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 수년간 한국시조문학진흥회는 정부 교육당국이나 지방 시 당국의 직접 지원금은 받은 바 없다. 시조계 현실을 백안시하는 관련 당국에 구걸을 하느니, 어려운 여건이지만 자체 회비와 후원금으로 묵묵히 시조진흥 행사를 해왔다. 시조의 골이 깊은 만큼 이제 올라갈 산은 더 높다. 높은 곳은 당장 오르기는 힘들지라도 목표가 되고 꿈도 커진다.

우리 시조단에도 이젠 이뤄야 할 꿈이 있다. 그 꿈을 우선 시조의 ‘범국민문학화와 세계화’의 완성이라 해본다. 올해 그 첫 단계의 하나가 시조의 유네스코 등재사업이다. 한국시조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 선포한 시조 명칭과 형식 통일안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시조는 명칭과 형식에 있어 여러 학설이 있었다. 작년 한 해 9명의 시조관련 분야별 전문학자와 단체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연구 토론을 거쳐 의견을 모아 통일안을 도출했다. 음악용어로는 ‘시조창’이라고 부르고, 문학용어로는 ‘시조’로 쓰기로 했다. 시조 한 수(首)는 3장 6구 12소절에, "글자 수는 ①초장 3·4·4·4, 중장 3·4·4·4, 종장 3·5·4·3을 합해 총 45자를 기본형으로 하고, ②종장 첫 소절은 3자, 둘째 소절은 5~7자로 하며, ③ 총 글자 수는 기본형에 2~3자 가감을 허용한다"로 요약된다. 우리 민족의 정형시(定型詩)이면서도 총 글자 수를 고정시키지 않은 것은 교착어인 한국어의 특성상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유연성 있는 정형이라 한다. 우리 겨레 전통 시조의 멋이요 묘미라 하겠다.

요즘 서울 북촌과 고궁거리에는 한복 입고 다니는 외국인이 자주 눈에 띈다. 작금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한국교육원에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다. 한복 입은 외국인이 한국어로 자작한 시조를 읊조리는 날도 이젠 꿈만이 아닐 것 같다. 올해 시조의 유네스코 등재는 한국 시조의 새 하늘을 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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