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모 방송국의 TV드라마에서 방영된 연속극 `모래시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마 정치깡패로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검사가 된 친구 앞에서 “나 떨고 있니”라고 물어보는 초췌한 모습의 최민수씨 연기가 가장 압권으로 꼽힌다. 그 후 시중에서는 최씨의 명대사인 `나 떨고 있냐'는 말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지금 대선자금 수사를 지켜보는 정치권과 재계로 인해 또다시 최씨의 명대사가 유행할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넘어 쓴웃음을 짓게 한다. 사실 그동안 정치권에 대한 재계의 정치자금 제공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며 이를 아는 국민들도 그저 관행처럼 생각하고 썩어빠진 정치권을 술자리 안주 삼아 분통을 터뜨려 왔던 게 소시민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권은 물론 국가원수인 대통령도 검찰의 수사대상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어르신들의 표현처럼 “참 세상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렇고 보면 우리는 참 늦은 감이 있다. 그동안 감히 이런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것은 권력의 무소불위에 숨죽여왔다가 개혁을 표방하는 정권이 들어서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검찰의 용기와 의지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미 시작된 대선자금 수사를 보면서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 92년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부패추방운동인 마니폴리테(Mani Pulite·깨끗한 손)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의 본격적인 수사로 시작된 마니폴리테는 1년 동안 3천여명의 정·재계 인사가 체포 또는 구속됐으며 이 가운데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이 1천여명이나 됐고 전체 의원의 4분의 1인 177명이 검찰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총선에서는 2차 대전이래 지속된 기민당의 장기집권과 사회·공산당과의 3강 체제가 무너지고 창당 두달밖에 안된 포르차 이탈리아가 21%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총선이 끝나고 진행된 재판에서는 총리까지 지낸 정치인들이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처벌됐고 사회당의 베티노 크락시 전 총리가 우리돈 300억원 가량의 불법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해외에 망명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우리 정치권과 재계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통해 이번 기회에 확실한 부패추방의 계기가 되기를 국민들 모두가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불법 정치자금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이러한 문제로 정치인과 경제인이 떨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술안주에 오르지 않는 그런 세상이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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