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한때 이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바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바보는 항상 웃고만 지내는 존재일거라 착각했던 것이다. 슬픔도 모를테고 아픔도 모를테고, 마냥 행복할 순 없을까 하는 욕심에서 비롯됐다. 물론 이 욕심은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 우리 부서의 ‘단톡’방 이름을 ‘희희낙락’이라 지은 것도 이 욕심의 표출이리라. 희로애락(喜怒哀樂)에서 노엽고 슬픈 일은 빠진 채 기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길 하는 바람이다.

 어렸을 때 가치관은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마찬가지. 6개월 이상 해외를 다녀왔다거나 1년 이상 자취를 한 여성과는 소개팅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 여자친구가 될 요건’이 아니었다. 각자의 고향에 이성친구가 있었음에도 자취를 하던 두 남녀가 동거와 같은 생활을 이어가던 모습을 봤을 때 더 확신했다(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면 기존 이성친구를 만난다고 했다).

 담배 또한 마찬가지이다. 흡연자이면서도 내 여자는 비흡연자여야 했다. 나름의 논리를 세웠다. ‘여성은 흡연을 하면 안 된다’가 아니었다. 여성도 흡연의 자유가 있되 ‘내 여자는 비흡연자였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이는 반대로 남성도 화장을 하거나 액세서리를 할 자유가 있지만 ‘그런 남자는 싫어한다’는 여자들이 많음을 안 뒤 그 시각을 차용했다. 즉, 인간으로서의 평등 외에 서로가 바라는 이성성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개념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흡연 여성도 사귀어 봤고(시작할 때 금연을 약속 받았지만 정이 든 이후 그것 때문에 헤어지자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1년 이상 자취한 여성도 만나봤다. 욕심은 있되, 바보가 됐으면 한다는 소망은 버린 지 오래다. 세월의 경험 때문에 그러한 기준들이 별것 아니었다는 걸 안 후 바뀐 부분이 있다는 걸 알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이까짓 고민은 사치스럽지 않은가. 확신에 차 살지 못한 적은 있어도 거짓되게 살지는 않았다. 이만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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