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 이어 안양 중앙공원에도 삼일절을 기념한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소녀상 건립추진위 고문단으로 새누리당의 이필운 안양시장을 비롯해 안양시의회 의장 등 전·현직 지자체 리더들까지 고문단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은 자못 커질 듯하다. 어쨌든 한일 위안부 합의상의 ‘소녀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비록 강제조항은 아닐지라도 이렇게 확산이 되도록 갈등을 관리하지 못한 점에서 귀책사유는 한국정부에 있는 게 명백할 듯싶다. 하지만 소위 전범국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총리란 자가 "10억 엔을 줬다며 약속을 이행하라"고 국민의 오장육부를 뒤틀어 놓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파국의 불씨는 소녀상 이전부터 존재했다. 최초 논쟁은 ‘위안부 피해보상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것인가’를 두고 시작됐다. 이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위안부 문제처럼 중대한 인권침해의 경우엔 국가간 조약 여부와 상관없이 가해국에 언제든 개별 청구가 가능하다’고 해석하며 일단락됐다. 2011년에는 헌법재판소가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가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정부 차원의 접근 기회도 열렸다. 하지만 정부는 위안부합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와 진술권을 보장하지 않은 결정적 실수’를 저지르며 파국의 단초를 제공해 버렸다. 이미 사망한 피해자들과 가족에 대한 피해회복을 누락시킨 점 또한 합의의 가치를 잃게 만든 요인이다.

 이렇듯 성급함과 경솔함으로 자승자박한 꼴이 돼버린 정부는 더 이상 피해자들을 위해서 ‘외교적 보호권’을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물론 정부의 권한이 상실됐더라도 피해자의 의사표시와 청구권까지 소멸된 건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놔두는 게 바람직하다. 정부는 일본에 유감의 뜻을 표하고, 소녀상 문제는 정부의 소관이 아니라고 솔직히 말한 후 10억 엔을 돌려줬으면 한다. 이와 별도로 한미일 삼각공조를 위한 노력은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실제로 이행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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