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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주말에 강원도 원주에서 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한 1박 2일의 코칭연수(강사 : 국민대 이의용 교수)를 받았다. 전국에서 온 다양한 전공과목의 교수들이 효과적인 강의를 하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과 정보를 교류하는 유익한 자리였다. 휴식시간 등 사적인 자리에서는 김기춘·우병우 등 최고 엘리트 출신들이 나라를 망친 데 대해 분개하는 얘기들이 많았다. 공학·인문학·간호학 등 다양한 전공과목의 교수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배출한 우수한 제자들이 유익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자랑하면서 보람과 긍지를 갖는다고 말했다. 곁에서 이런 말을 듣는 법학전공 교수들은 김기춘·우병우를 비롯한 일부 악덕 법조인이 배출돼 사회에 해악을 끼친 데 대해 자괴감을 느껴야만 했다.

 최근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실체들이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1만 명에 가까운 문화예술인들의 활동내용을 트집 잡아 각종 제재와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고 하니 우리나라를 과연 ‘민주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정점에도 김기춘·우병우가 거명된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김기춘은 1939년생(만 78세)으로 경남 거제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만 21세의 나이로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검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했고,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회 법사위원회와 행자위원회에서 위원장을 지냈다. 또한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14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1주일 앞둔 1992년 12월 11일 부산 지역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해 여당(민주자유당) 후보를 지원하는 내용을 논의했던 ‘초원복국집 사건’의 중심인물이었다. ‘장관 자리가 얼마나 좋은 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부산·경남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 ‘우리가 남이가’ 등의 말이 오갔다는 사실에 대해 당시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이 대화가 세상에 알려진 건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 측 관계자들의 도청과 폭로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주류 언론을 앞세워 교묘한 여론 조성을 한 탓으로(관권선거의 잘못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이에 자극받은 부산·경남 지역 표심이 결집했고 결국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또한 박정희 정부 시절에 독재체제의 영구화를 획책한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핵심적으로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병우는 1967년생(만 50세)으로 경북 봉화 출신이다.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중 만 20세의 나이로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 후 검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해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을 역임했고, 변호사 생활을 하다 2015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했다(그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민정비서관을 제안했다"고 작년 12월 22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우병우는 ‘물적 증거가 없음에도’ 무리한 강압수사와 구속 추진을 벌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렇듯 김기춘과 우병우는 공부를 잘한 덕에 화려한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실은 권력에 아부하는 삶을 산 것이다. 특히 그들은 ‘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법학을 공부해 출세했음에도 ‘인권 침해’를 앞장서 자행했으니 ‘학문을 왜곡해 세상에 아부해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이란 의미를 지닌 ‘곡학아세’란 말이 어울려 보인다. ‘곡학아세’는 ‘배운 자’의 개인적 타락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해악을 주는 ‘독’이다. 법조계뿐 아니라 그 밖의 고위 공직과 학계에도 곡학아세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 반성해야 한다. ‘배운 자’들이 ‘학문적 양심의 순결’을 저버리면 안 된다. ‘배워서 남 주자’는 미덕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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