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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대학원장
고도의 기술발전은 인간소외를 수반했다. 기계가 자동화될수록 인간들은 편리해졌지만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일터를 떠나야 했다. 무인 자동차의 등장은 운전대를 잡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여유로움을 주겠지만 누군가는 일자리에서 쫓겨 나야 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바둑에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겨 인공지능시대의 도래를 피부로 느끼게 하더니, 어느 병원에서는 ‘왓슨’이라는 인공지능 의사에게 환자가 몰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의료진과 왓슨의 처방이 엇갈리면 왓슨을 환자가 선택한다는 것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곳에서도 계산대가 사라지는 무인 상점시대가 열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느낌이다.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빼앗아가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은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을 전개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더 고도화된 기술문명 속에서 일터를 떠나거나 소외된 인간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인문학에 길을 묻고 있다. 여기에 교육부는 지난 1월 12일 ‘인문학 진흥 5개년 계획’을 내놓고 초등학교 1, 2학년부터 대학, 성인들까지 생애주기별로 맞춰 인문학 기반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동안 교육부는 대학을 평가해 하위그룹으로 처지는 대학의 정원을 줄이거나 없애려는 계획을 가져왔다. 부산지역의 17개 대학 중 철학과가 남아있는 대학은 부산대학의 철학과가 유일하다. 취업도 잘 안 되고, 대학들의 자체평가에서도 점수가 낮았으니 폐과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이것은 철학과만의 문제가 아니고 文史哲의 학과들이 유사하다. 지금은 인문학을 진작시키기 위해 교육부에서 코어사업, 도시인문사업 등을 추진하더니 이제는 박물관, 도서관 등에서 추진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에도 지원하겠다는 ‘인문학 진흥 5개년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인문학이 무엇이길래 고도화된 기술 발전의 시대는 인문학에 길을 묻고, 대학은 인문학을 내쫓고 있는가? 인문학은 문학, 역사학, 철학 등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분야의 지혜들은 서양에서는 플라톤 이래, 동양에서는 공자 이래로 수많은 책들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고 눈에 보이는 수익을 창출해야 되는 사회에서는 이런 학과들이 덜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산업화의 극치에 다다를 때 다시 돌아갈 곳은 사람에 관한 학문이다. 사람에 관한 학문 중에 꼭 읽으면 좋을 가치 있는 책들이 고전으로 남아 읽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그레이트 북스’(Great Books)프로그램이라고 하여 대학생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고 있다. 심지어는 세인트존스대학 같은 곳에서는 대학 4년 내내 서양 고전 100권을 매학기별로 나눠 읽고 토론해 졸업시키는 대학도 있다. 그런데 그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취업률도 좋고, 그 대학의 평판도 미국에서 매우 높은 위치에 있다.

 훌륭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인류의 지혜가 정제된 언어로 씌여져 있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 이성을 흡수하는 것이고 나 개인의 언어를 버리고 타인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내 생각을 타인과 조절하는 것이고, 세상 이치의 넓고 깊음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하지 않는 사람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기들끼리 개굴개굴 청개구리 언어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젊은 시절에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많은 변화를 예고하는 일이다. 풍부한 어휘력과 훌륭한 글쓰기를 체득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신중함도 함께 길러줄 것이다. 연설을 잘했던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다.

 교육부가 인문학에 길을 묻는다고 하면서 무늬만 인문학인 허접한 사업들에 돈을 펑펑 쓰고 지원해야 될 독서정책에는 인색한 계획을 세우지 않길 기대한다. 그러면 스스로 연설문을 작성하고 스스로 멋진 글을 인용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우리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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