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jpg
▲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한국 외교가 총체적인 난관에 직면했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동맹에 적지 않은 재조정이 예상되는 가운데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압력 또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여기에 소녀상과 관련한 일본과의 갈등에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다. 강력한 지도력을 앞세우는 트럼프, 아베, 시진핑, 푸틴 등이 각각 자국의 이익과 번영에 주력하고자 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만 정치적 혼란과 리더십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유력 대선 후보들의 면면 또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재건하는데 확신이 들 만큼 희망적이지 못하다. 구체제에 대한 적폐는 과거에 대한 증오심을 확대 조장하고 포퓰리즘을 극대화해서는 절대로 제거할 수 없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외교 또한 구원(舊怨)을 부추겨 감성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자존심과 체면에 손상을 가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는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 감정에 편승해서 관계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밉고 괘씸해도 일본은 경제적, 군사적으로 한국보다 절대 우위에 있는 국가다.

현재 재래식 무기 전력으로 중국은 일본을 이길 수 없다. 많이 격차를 줄였지만 아직도 일본 경제는 한국 경제보다 4배나 더 크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얻은 과거의 상처만큼이나 현재의 안보가 중요하고 절박하다. 그렇다고 우리의 안보 상황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의 없는 사과에 항의해 부산 일본 영사관에 소녀상을 세운 시민단체의 행태를 지적할 수는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은 그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나치가 저절렀던 행위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과거와의 단절과 청산에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하지만 독일과 달리 일본은 앞으로도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과거에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 19세기 말 이래의 선민적 민족주의가 저지른 국가 범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라고 주장한들 일본이 쉽사리 우리 요구에 응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거기에 분노하고 증오하는 마음으로 일본에 대항하는 행태 또한 무의미하다. 칭찬은 받는 것보다 하는 것이 더 어렵듯이 용서도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큰 사람이다. 게다가 칭찬하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며 그럼에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국가가 대국이다. 아무리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더라도 이러한 물리적인 조건으로 대국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종이 호랑이 중국은 일본을 용서하지 않을 종이 대국일지 모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 일본을 용서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 만행을 잊는다거나 일본의 제국주의 부활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 것과는 별개의 사안이다. 우리끼리의 자위가 아니라 2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일본보다 인류 최초로 문자를 만든 한민족이 더 우월한 민족이라는 점을 우리 스스로 믿는다면 그런 민족답게 대범하게 일본의 잘못을 눈 감아 주는 아량을 베풀어도 될 일이다.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사과하지 않는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진정으로 상대를 이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죄는 가해자가 하지만 용서는 궁극적으로 이긴 자가 하는 법이다. 아니 용서해야 이긴 자가 된다. 우리가 일본에 끝까지 사죄를 요구하는 한 대한민국의 현재는 여전히 패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일제 통치 시기는 피해자의 역사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해 승자의 역사로 남아야 한다. 그것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이다.

빈 조약 22조에 따라 상대국 공관의 안녕과 품위를 지킬 책무가 한국 정부에 있음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싫다는 상대에게 굳이 소녀상을 욕보일 필요는 없다. 차라리 광화문이나 시청 앞 광장에 놓고 아픔을 보듬고 추모하는 편이 훨씬 인간적이고 역사적인 행동이다. 원망과 증오는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스란히 반사돼 자신의 심장을 겨눈다. 한편 용서와 관용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인 자기 자신을 위해서 더 필요하고 절실하다. 증오와 관용 사이에서 과연 어떤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 볼 때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