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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우리들은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웃과 불편한 관계가 되거나 여러 형태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는 말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도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예상하지 못하게 나쁜 방향으로 상황이 꼬이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로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등과 같이 말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온 나라의 갈등이 극심한 양상이다. 이 또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말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거니와 잘 해결될 수 있을 듯한 일도 적절치 못한 상호 간의 말 때문에 확대되곤 한다. 문제는 논란이 벌어지는 일마다 진실이 분명히 있을 터인데 해석은 제 각각이거나 정반대인 경우도 많다. 각기 처해 있는 위치와 그에 따른 이해득실이나 신념의 차이 때문일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간단한 사실도 터무니없는 말로 진실을 호도하는 데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가정은 물론이고 어느 사회, 어떤 조직이건, 그 안에서 쏟아내는 말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들이 예외적이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로 여겨야 될 상황이 돼 있는 것 같다. 학교 사회 역시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말이 화근이 돼 벌어진 일들이 꽤 있다.

 오래 전, 충남의 한 학교에서 학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학교를 방문한 손님에게 마침 교무실에 있는 여교사에게 차(茶)시중을 부탁했다는 이유로 그 교사 소속 교직단체로부터 공개 사과 요구를 강하게 받게 되자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 학교장의 자살 이유가 당시에는 무척 충격적이라 한동안 언론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교원들은 물론이고 학부모, 교직단체, 일반 시민들까지 격론에 휩싸이게 했었다. 터무니없는 이념 논쟁으로까지 번졌던 이 사건의 핵심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분명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처럼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말에는 격이 있다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말의 조화를 간과했던 탓이다.

 동료 직원에게 차 한잔 부탁하는 일쯤은 그리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으로 여겼을 학교장과는 달리 교사 입장에서는 학교장의 자세나 말투에서 강한 반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선생, 차 한 잔 가져와!" 라는 말보다 "이 선생님, 바쁘시지 않으면 차 한 잔 부탁해도 될까요?"라고 하는 말이 훨씬 더 듣기 좋은 것처럼 같은 뜻의 말이라도 좀 더 공손하고 신중하게 표현하고 말했다면 어떠했을까? 이것이 바로 말이 지니고 있는 조화(造化)의 묘미이다.

 수년 전의 일이지만 공무원과 민원인이 대화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나눈 말 한마디가 확대돼 국정감사장에서까지 논란이 됐고 결국 교육감까지 나서 해명한 일이 있었다. 한 중학교에서는 교감이 막말을 했다고 교사와 학부모까지 나서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그 교감이 다른 학교로 전보된 일도 있다. 중학교 운동부 학생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지도해 오던 십여 년 경력의 지도자가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이유로 사퇴를 주장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다. 학교에서 나가는 하수도 때문에 집이 무너져간다고 수년째 민원을 제기하며 막말을 쏟아내는 끈질긴 민원인도 있었다.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책임지는 학생부장 교사들은 소통은커녕 대화조차 되지 않는 일부 학부모 때문에 소신껏 학생을 지도할 수도 없다고 한탄을 하기도 했다.

 함부로 쏟아 놓은 말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성경의 ‘야고보서간’에는 사람들의 말을 지칭하는 놀라운 구절이 있다. "아주 작은 불이 얼마나 큰 수풀을 태워버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혀도 불입니다.(중략) 혀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짧은 말 한마디로도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지만 아프게도 할 수 있는 것이 말의 조화이다.

 현란하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일컬어 ‘말재주가 뛰어나다’라고 했지만 그보다는 말의 조화를 잘 살려 말할 줄 아는 것이 말의 재주이고 삶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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