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고, 뭔 설 연휴가 이리도 긴지. 게다가 한심스럽기까지. 신세한탄, 아니다. 마치 나흘이 지구가 생성된 후 생명이 탄생하고 인류 진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걸린 45억 년보다 길게 느껴진다. 뱀파이어의 피를 향한 타는 듯한 목마름이 이보다 더 고통스러울까.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어떠한 결심을 특정 날짜에 맞춰 실행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가족과 양력 새해 새날부터 금연하기로 약속했다. 내게는 일종의 고문이요 공포인 금연. 음력 설이 새해 새날이라는 편협한 핑계를 대며 미뤄왔지만,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내와 두 딸의 첩보위성 수준의 감시가 시작됐다. 흡연 욕구를 줄이기 위해 가수 알리의 노래 제목처럼 별짓 다해 봤다. 그런데도 며칠 전 본 길 위에 버려진 담배꽁초만 생각날 뿐. 감시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치매 초기일 수 있습니다". 장장 35년간이나 이어온 내 끽연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한 금연 상담사의 ‘혼이 담긴 구라’다. 언제부턴가 글을 쓰거나 대화를 할 때 엉뚱한 단어를 쓰거나 말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는 내 말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다. 물론,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였겠지만, 겁이 덜컥 났다.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여하튼 내 결심을 굳혀주었으니 구라를 물아일체의 경지로까지 승화시켰다고 인정하자.

 도저히 내 의지로 담배를 끊을 자신이 없어 약물의 힘을 빌려 버티고 있다. 그런데 이 육시랄 놈의 흡연욕구는 쉽게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불법추심업체 직원처럼 악착같고 끈질기다. 오대양 바닷물이 모두 증발할 때까지 눌어붙을 작정인가 보다. 썩을!

 살기 위해 나뭇가지를 붙들기보다 벼랑 끝에서 손을 놓아버릴 수 있어야 대장부다. 연기를 폐부 깊숙이 들여 마신 후 찾아오는 안정감. 다시 연기를 내뿜을 때 느껴지는 구수함과 단맛의 잔향까지. 모두 다 놓아 버리련다. 나는 지금 무간지옥에 빠져 있다. 단호하지 못했던 내게 주는 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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