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쟁이 어원은 고려 때 개성에서 가게를 차려 놓고 장사하는 사람을 일컫던 말로 더 많은 이문을 남기려 할 때의 인색한 모습을 비꼬아, 가게라는 단어에 ‘쟁이’를 합해 ‘가게쟁이’라 한 것이다.

깍쟁이는 ‘장사치’의 또 다른 말일 뿐만 아니라, 나라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고 수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지는 가운데 ‘서울깍쟁이’란 말이 새롭게 불러지기 시작했다. 깍쟁이는 까다롭고 인색하며 자기 이익만 밝히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서울 사람들을 ‘서울 깍쟁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하는데 원래는 깍쟁이는 깍정이가 변해서 된 말이다. 그러다가 점차 그 뜻이 축소돼 이기적이고 얄밉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게 됐다.

깍정이패의 유래는 조선 건국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 태조가 1396년 10월 25일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에 경범자들에게 얼굴에 먹으로 죄명을 새긴 다음에 석방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얼굴의 흉터 때문에 사회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는 전과자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살았는데 이들이 모여 살던 곳이 바로 지금의 청계천으로 옛날에는 청계천에 흘러 들어온 모래와 흙이 많아 이것을 긁어모아 산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인공적으로 만든 산이라고 하여 ‘조산’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굴을 파고 함께 모여서 살았으며, 이 토굴에 사는 땅꾼들은 서로 패거리를 지어서 큰 잔칫날이나 명절 등에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며 구걸을 했다.

그런 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개중에는 돈을 모아 장사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장의사를 차렸다. 이렇게 청계천 등지의 조산에 기거하면서 거지 생활을 하거나 장의사를 하면서 방상시 같은 무뢰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을 일러 깍정이라 불렀다. 여기서 방상시는 장례행사에서 무덤 속에 있는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하며, 무뢰배들을 일컫는 말이다. 살아가다 보면 조금은 손해를 보고 전철이나 버스에서 작은 일이지만 어르신, 임산부,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양보와 배려를 하는 마음을 우리는 바쁜 일상에만 쫓겨 이 작은 배려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본다. 새해에는 까다롭고 인색하며 자기 이익만 밝히고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깍쟁이’가 아닌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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