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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1620년 9월 102명의 영국 순례자(Pilgrims)가 메이플라워호에 승선했다. 불행히도 폭풍우를 만난 배는 방향을 잃고 거의 한 달간 낯선 해안을 표류하다가 12월 21일 고단한 항해를 마치고 간신히 신대륙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그곳은 버지니아보다 훨씬 더 외진 곳이었고 그들은 이 지역에 대해 아무런 특허도 권리도 없었다. 그들은 플리머스 촌락을 건설했는데 초기 생활은 비참했다. 첫해 겨울은 이민자의 태반이 사망했고 병자 간호와 식사준비, 세탁을 할 만큼 기력이 있는 사람이 두세 명밖에 없던 때도 있었다. 그들은 옥수수 농사와 고기잡이를 가르쳐준 친절한 인디언의 도움으로 멸망을 면했다. 1630년 여름까지 약 1천 명의 이민자가 도착했고 그 뒤를 이어 더 많은 사람들이 건너왔다. 당시 영국의 국정이 매우 혼란스러워 많은 정치적·종교적 망명자가 아메리카로 건너온 것이다.

 상기(上記)는 프랑스의 역사가 앙드레 모루아가 기록한 영국인의 신대륙 이민사(移民史)에 나오는 내용이다.

 간난신고 끝에 아메리카 정착에 성공한 미국인들은 하와이를 미국 영토에 합병한 후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해 조선인을 대상으로 이민자 모집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들은 낯설고 물설은 미국으로의 이민을 원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조상의 뼈가 묻혀있는 고국을 등지고 타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는 동방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니 ‘은둔 조선’이니 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나라였다. 당시의 이민모집 회사가 갖은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유혹했던 광고내용이 대변해 주고 있다. "▶하와이 군도로 누구든지 일신이나 혹 권속을 데리고 와서 살고자 하고자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 편리케 주선함을 공고하노라 ▶학교 설립법이 광대하며 모든 섬에 다 학교가 있어 영어를 가르치며 학비는 받지 아니함 ▶월급은 미국 금전으로 매삭(每朔) 15원(일본 금화 30원 대한돈으로 57원가량)씩이요, 일하는 시간은 매일 10시간 동안이요, 일요일에는 휴식함" 등등의 내용이 그것이었다.

 광고가 효과가 없자 이민모집 브로커 데슐러는 선교사들을 동원해 이민 설득에 나섰다. 이때 적극적으로 이민 모집 설득 작전을 편 사람으로 알려진 인천 감리교회의 조 헤버 존스(Geo Heber Jones)목사는 교인들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네다. 하와이는 기후도 좋고 살기 좋습네다. 조선보다 먹을 것이 많이 있으며 잘 살 수 있습네다. 미국은 하나님 믿는 나라입네다. 아무런 걱정할 필요 없습네다"하며 앞장서 이민자를 모집했다. 마침내 1902년 12월 22일 이민자 121명이 인천 제물포항에서 배에 올랐다. 이날이 한국의 미국 이민사의 효시(嚆矢)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제국이 아메리카 신대륙에 이주해 경제적 기반을 갖추는데 성공할 수 있도록 담배와 옥수수 재배 농법까지 가르쳐 주며 정착에 기여한 인디언을 내쫓기까지 했던 미국 내 이민자들이다. 신대륙 식민지 개발에 필요하다고 해 이민노동자들을 한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모집했던 미국이다. 세계 각 나라의 인종과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이룩한 오늘날 아메리카 미합중국이다.

 우리는 근자까지만 해도 미국을 일컬어 흔히들 ‘도가니(Melting Pot)’라는 말로 표현해 왔다. 미국에는 수많은 민족이 제각각 언어, 문화, 생활습관을 달리하면서 살고 있기에 나온 말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도가니’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샐러드(Salad)’라는 말이 대신하고 있다. 샐러드는 여러 가지 채소를 한 데 넣어 맛을 내는 것처럼 복합적인 민족이 미국 문화에 하나로 동질화되면서 혼합된 문화를 창조해 낸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이른바 멜팅 포트, 샐러드 문화라는 자랑스러운 닉네임을 지워버리려고 하고 있다. 빗장을 걸어 잠그고 신쇄국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한 세기 전 한국에서 처음으로 이민선을 태워 보낸 곳이 인천 제물포항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을 목도하면서 느껴지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은 어쩔 수가 없다. 아메리카의 이민정책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문구가 미국의 국장(國章)과 화폐 속에 나타나 있다. E’pluribus unum(다수로부터 하나)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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