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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은 대국 리더십을 보여야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역사소설가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02월 07일 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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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시진핑 중국 주석은 근래 들어 부쩍 자신과 남에 대한 잣대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지적에 눈감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가훈(家訓)이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라고 했었다. 나의 잣대로 남을 재단하거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강요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닌가. 그랬는데 작년에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에서 ‘당(黨)의 핵심(核心)’이라는 칭호를 정식으로 부여받고 나서 핵심 보직에 시진핑 인맥을 속속 앉히고 ‘1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자 10년 임기를 마친 뒤에도 권좌를 놓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합창이라도 하는 듯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우선 올해 다보스포럼 개막 연설부터 살펴보자. 시 주석은 이날 보호주의 무역을 반대하며 세계화와 개방 경제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 세계화라는 단어를 십여 번 넘게 거듭 언급했다고 한다. 이런 태도에 대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한·부유한·자랑스러운·안전한 미국’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와 통상 정책을 펼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겨냥했다고 볼 수 있겠으나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베이징에 있는 주중 독일 대사관은 "중국 내에서 사업하고 있는 외국 기업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중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반박성 성명을 냈고, 중국 정부를 향해 "말한 그대로 실천하라"고 요구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언론들도 "중국은 경제 세계화의 수호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꼬집었다.

 우리 한국으로서는 더욱 그런 실정이다. 그들은 지금 아예 대놓고 경제적인 보복을 자국 우선주의 입장에서 하고 있지 않은가. 아직 설치하지도 않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면서 한류 금지령, 제주항공 등의 전세기 취항 불허, LG 화학과 삼성 SDI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에 대한 보조금 금지, 우리나라 화장품에 대한 수입 규제 등을 다발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우리와 중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사이다. 발효된 지 겨우 1년을 넘었다.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선 정치를 경제에 끌어들여 위협하고 국가 간의 협정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 무역주의와 경제 세계화를 주장하는 이른바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다. 이래 갖고 미국·유럽 중심의 국제질서를 대신하는 소위 과거 중화제국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이루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실현될 수 있겠는가. 얼마 전 중국 저장성(浙江省) 이우(義烏)에서 출발한 화물열차가 대륙을 횡단하고 영·불 해저터널을 통과하는 1만2천여 ㎞의 긴 여정 끝에 런던 외곽에 도착해 쾌재를 부른 일도 그렇다. 물론 이 성공은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상으로는 중앙아이사와 유럽을 잇고 해상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유럽·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중국의 경제 네트워크화 프로젝트) 구상의 첫 실현이라는 의미가 크다.

 2013년 그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를 순방하면서 야심차게 일대일로를 언급한 뒤 국가의 미래전략사업으로 추진해 거대한 운송 인프라 투자로 육·해상 주변의 60여 개국을 포함하는 경제권을 구성한다는 발상을 구체화시켰다는 면에서 중국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고대 실크로드를 재현했다"는 흥분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바로 이 점이다. 시 주석의 웅대한 전략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쩨쩨하게 이웃 나라를 대국주의, 자국 우선주의로 깔보듯이 견제해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잇는 ‘철의 실크로드’를 처음 제창한 사람은 2000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이 구상이 실현되지 못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역량 부족 때문이지만 발상의 원조는 분명 한국이었다. 시 주석의 다른 잣대를 논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더 이상 헛발질하지 않아야 하겠으나 지금 ‘정부 실종’이라는 어려운 터널을 지나는 이웃에게 대국다운 풍도를 보여주는 것이 미래의 한중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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