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을 오늘날 정치판에 빗대 바꿔 말한다면 `돈 뭉치 보기를 종이더미 보듯 하라'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빌라 한 채를 빌려 벽돌을 쌓아 놓듯 돈 싸놓는 창고로 썼다거나, 냉동차 비슷한 트럭에 백억, 이백억의 돈을 가득 실어다 놓아두면 접선할 상대측 기사가 와서 몰고 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곰곰이 씹어보면 정치하는 사람들은 돈 보기를 그냥 종이도 아니고 무슨 폐지쯤으로 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 아무리 정치가라도 만약에 그 엄청난 수량의 뭉치들을 전부 돈으로 여겼다면 아마 지레 가슴이 떨리고 숨이 가빠져서 정신이 다 몽롱했을 것이고, 뉴스의 기자가 말하듯 그토록 걱정없이 천연스럽게 주고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10분의1'이 던진 화두

 
여기서 돈을 받는 쪽인 정치판에만 빗대 이런 비유를 든 것은 주는 쪽 사람들인 기업가들은 기업을 해오면서 그 정도 돈은 늘 주물러 오는 터이고, 또 늘 정치판에 물대듯 돈을 대오는 까닭에 이제는 완전히 이력이 났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뉴스를 접하면서 많은 서민들이 `그것은 절대로 돈이 아니었을 것'이라거나 혹은 `돈이 아니고 폐지 뭉치였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서민들의 착한 상식이고, 또 거꾸로 그런 것이 순진한 서민들이 생각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언뜻 정치하는 사람들이 돈을 종이 뭉치로 생각하는 것이나 일반 서민들이 그날의 뉴스 속 돈 뭉치를 폐지로 생각한 것이나 똑같아 보인다. 과연 그 둘이 같은 것일까.
 
거기에는 이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서민들은 아마 3천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돈은 결코 보지도 듣지도 못할 테니까 종이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정치가들은 그런 돈은 늘 보고 만지고 장난감 벽돌 쌓듯 할테니까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아서 한낱 종이 뭉치로 여길 것이고.
 
검찰이 서슬 퍼렇게 하나씩 둘씩 파헤쳐 가니까 그 돈의 액수라는 것이 몇 백억이 될지, 몇 천억이 될지 조만간 상세히 밝혀질 터이지만 대단한 금액임에는 틀림없을 듯하다. 거기에 대해 최근에 대통령이 던진 화두, `십분의 일' 이야기가 시중에서는 이런 식으로도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돈의 십분의 일이면 전국의 소년소녀가장을 다 먹여 살릴 수 있다거나, 양로원을 몇 십개 운영할 수 있다거나, 암 퇴치, 에이즈 퇴치에도 요긴히 쓰일 수 있다거나, 남극에 탐사 팀에 쇄빙선을 10척쯤 사서 보낼 수 있다거나…. 또 시 나부랭이나 붙잡고서 어쩌다 얻어걸리는 2백만원 문예진흥기금으로 시집 한 권 내고 나서는 그나마 고맙고 고마워서 가슴이 결리는 우리 같은 부류들은 고작 모여 앉아서 `만약 그 십분의 일이 떨어진다면 대한민국 전체 문인들이 그만…'.


구세군냄비속의 참 돈 1천원

 
다시 앞으로 돌아가거니와 돈을 종이 휴지 정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흔하다는 의미이거나, 돈의 가치나 값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거나, 아니면 몇 백년 전 최 무슨 장군처럼 돌덩이를 보듯 완전히 초탈했거나 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데 신문을 보면 돈을 영락없는 종이 뭉치로 생각하는 데가 소위 `대선캠프'라는 곳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거액이 더 이상 거액으로서의 인식이 되지 않고 또 검은 돈, 흰 돈의 구별도 전혀 없다. 이곳이야말로 정말 밑 빠진 독이라는 느낌이다. 도대체 그 돈이 다 어디에 쓰인단 말인가.
 
12월의 구세군 냄비 속의 천원짜리 지폐를 넣는 아이의 손, 평생 삯바느질을 해서 모은 전 재산을 대학에, 연구기관에 쾌척하는 노파. 이런 정재(淨財)들은 결코 정치가의 손이나 그들이 모여 있는 대선캠프 같은 곳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깨끗한 돈이다.
 
돈, 돈, 돈.

돈을 폐지가 아닌 참 돈으로 보자.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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