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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윤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에 가해진 전기 자극으로 일시적인 경련이나 발작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영어로 ‘Epilepsy’라고 하는데, 이는 그리스어로 악령에 영혼이 사로잡혔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 일시적이지만 갑작스러운 발작 증상으로 귀신에 들린 사람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만큼 뇌전증 환자들은 사회적 낙인으로 이중고를 겪기도 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국내에서도 ‘간질’을 대신해 뇌 내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는 의미로 ‘뇌전증’으로 진단명을 변경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뇌전증을 정신적 질환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뇌전증은 만성적인 신경성 질환으로 뇌세포 내의 이상신호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는 발작을 억제하는 약물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뇌전증이 발생하는 원인은 유전, 교통사고로 인한 뇌손상, 분만 중 뇌손상, 뇌염이나 뇌수막염으로 뇌의 신경세포가 망가진 경우, 뇌종양, 뇌 혈관기형 등 다양하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령화와 함께 퇴행성·노인성질환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합병증으로 인한 뇌전증 또한 증가하는 추세다.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은 크게 부분발작과 전신발작으로 구분된다. 전신발작은 발작이 대뇌의 광범위한 부위(양측)에서 동시에 시작하는 것으로 발작 초기부터 갑자기 의식을 잃고 호흡곤란, 청색증, 몸을 떠는 증상이 나타나거나 갑자기 하던 행동을 중단하고 멍하니 바라보거나 고개를 떨어뜨리는 증세가 5~10초 정도 지속되기도 한다. 또한 깜짝 놀라듯 불규칙적인 근수축이 양측으로 나타나 식사 중 숟가락을 갑자기 떨어뜨리거나 근육의 긴장이 소실돼 길을 걷다 푹 쓰러지기도 한다.

 대개 이러한 발작만을 뇌전증 발작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뇌피질의 일부에서 기인한 발작을 의미하는 부분발작에서 빈도는 더 많을 수 있다. 의식의 소실 없이 한쪽 손이나 팔을 까딱까딱하거나 한쪽의 얼굴이나 팔 등의 이상감각이 나타나는 단순 부분발작과 초점이 없는 눈으로 한 곳을 멍하게 보거나 의식이 손상된 상태로 입맛을 쩝쩝 다시든가 단추를 끼웠다 풀었다 하는 등의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복합 부분발작이 있을 수 있다.

 발작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드물지만 반복되는 오심(가슴속이 불쾌하고 울렁거리며 구역질이 나면서도 토하지 못하고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원인을 찾지 못하는 반복적인 이상증상의 경우 뇌전증을 감별해야 한다.

 이러한 뇌전증의 경우 약물치료가 기본이다. 뇌전증 환자의 70% 정도는 약물치료로 발작이 멈춰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 따라서 뇌전증 환자들은 반드시 약을 정확하게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전증 발작이 목욕·수영·운전 등 일상생활 중에 갑자기 나타나면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뇌전증의 증상만으로 환자를 기피하거나 취업 등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뇌전증은 쉽지 않지만 대부분 약물로 치료돼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만성질환 중 하나이다. 그저 무섭거나 이상한 질병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침 다음 주는 세계 뇌전증의 날(2월 13일)이며, 대한뇌전증학회에서 지정한 뇌전증 주간(2월 13~17일)이기도 하다. 이를 계기로 조금씩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뀌길 기대해 본다.

 ▶세계 뇌전증의 날 기념 무료 건강강좌=2월 15일 오전 11시 국제성모병원 3층 마리아홀

 <도움말=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김혜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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