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왠지 비오는 날이 참 좋아."

 B: "365일 비만 온다면 광합성 작용을 못하는 건 둘째 치고 결국 우린 모두 수장되고 말거야.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 보면 너의 말은 단 한마디도 신뢰할 수가 없어."

 독자들은 위의 대화를 보며 피식 웃으실지 모르지만 실제 이런 류의 대화는 일상생활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 공적인 토론의 장에서도 이 같은 억지 논리가 전파를 타기도 한다.

 B는 A의 말을 멋대로 해석해 마치 A가 비오는 날만 좋아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그의 말을 공격하고 있다. A는 단지 비오는 날이 좋다고 했을 뿐 다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름하여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다. 논리학 용어로 상대방의 입장을 곡해함으로써 발생하는 비형식적 오류를 말한다. 외견상 상대방의 입장과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명제, 즉 ‘허수아비’라는 환상으로 상대방의 주장을 대체하고 그 환상을 공격하는 것이 허수아비 때리기다. 허수아비 때리기의 핵심은 제 아무리 공격해봤자 환상은 환상일 뿐 상대방의 당초 입장은 전혀 반박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는다는 점이다. 이 오류는 본디 전장에서 전투훈련을 하면서 가상의 적인 허수아비를 만들어 공격한데서 비롯됐다. 허수아비는 단지 훈련용 가상의 적에 불과한데도 거기에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매몰된 나머지 정작 적 자체에는 관심과 초점을 잃게 된다.

 지난달 25일 직무정지된 박근혜 대통령이 인터넷방송인 정규재TV와 기습 인터뷰를 ‘감행’했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약속대련식’ 인터뷰는 그야말로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의 전형이었다. 국회 탄핵심판소추위원단이 제시한 탄핵 사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반박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인터넷상의 루머라는 ‘허수아비’를 때리는 데 골몰했다. 국민들은 정윤회와 밀회를 했는지, 정유라가 대통령의 딸인지, 청와대에서 굿을 했는지 따위에 관심이 없다. 다 알다시피 이런 루머가 탄핵사유도 아니다. 허수아비를 공격하다 보면 우월감에서 오는 쾌감은 얻을 지 모른다. 하지만 잃는 것은 쾌감을 뺀 모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