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미처 알지 못했다. 이렇게 위험한 실체일 줄이야….

 동심의 세계에서는 그저 춘향이 타다가 이몽룡과 맞닥뜨린, 그런 낭만이었다. 때론 흠모하는 이성을 담 너머 보기 위해 이용하는 애틋함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는 모두 그저 이미지였을 뿐이다.

 태어난 구조부터 위험했다. 양 가닥이 어딘가에 단단히 고정돼야 하는데, 이부터 불안하다. 과거에는 수백 년 된 굵은 나뭇가지나 튼실한 나무기둥을 설치했다. 온전한 나무를 훼손해야만 했다.

 오늘날 그네는 더욱 위험하다. 양 가닥은 쇠로 된 고리로 연결돼 있다. 잘못 잡았다가는 손가락이 끼어 다치기 일쑤다. 행복함을 선사할 거라고 믿었던 아이들에겐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쇠로 만들어져 겉으로는 더 튼튼하게 보이지만 이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녹이 슬어 부실해진다. 제때 기름도 칠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정성스럽게 닦아주기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폐기 처분할 때 골칫덩이가 된다.

 그네의 움직이는 역학 또한 위험하다. 어찌 보면 이기적이다. 어렸을 때 처음 타 본 기억을 떠올리면 알겠지만 혼자 움직이기는 어렵다. 누군가 밀어줘야 한다. 그러다가 혼자 탈 수 있을 때가 되면 막무가내다. 언제 누가 도와줬느냐는 식이다. 허리나 무릎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다가 속도가 붙으면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앞뒤로 움직일 뿐이니 지나가는 사람이 다쳐도 제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혼자 누리는 양 착각이 들면 종내에는 나르시시즘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역학은 바로 옆 시소와 비교해도 분명해진다. 시소 또한 단순하게 위아래로 움직이지만 원천적으로는 혼자 그러할 수 없다. 누군가와의 균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시소는 상대방과의 몸무게가 차이나면 가벼운 쪽이 뒤로 가거나 무거운 쪽이 앞으로 오는 배려를 한다. 그네는 그렇지 않다. 걸어 올라가야 하는 수고의 답례로 단 몇 초에 지나지 않지만 스릴을 선사하는 옆 미끄럼틀과 비교해도 그네는 너무나 독선적이고 독단적이며,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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