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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범열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사업팀장
요즘 공조(共助)라는 영화가 개봉해 예매율과 관객수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에서는 남한 형사와 북한 형사가 공조수사를 통해 남한으로 숨어 든 북한 범죄자를 잡는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결국은 남과 북이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영화 얘기나 남북통일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속에서도 공조(共助)를 통해 좋은 성과를 내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 1층에 살던 박모 씨와 두 딸이 생활고로 고생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지하 셋방에서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물론 수입도 없는 상태였으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구축한 어떠한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복지종사자는 물론 국민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논란과 법안 개정의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결국 2014년 12월 이른바 ‘송파세모녀법’으로 불리는‘사회보장 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을 만들게 됐다.

 2015년 7월부터 정부는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사례를 찾아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복지허브화를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가장 작은 행정단위인 읍면동에서는 지역보장협의체를 구성해 지역주민들이 자기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대상자를 찾아 도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렇듯 ‘송파세모녀법’은 기존 ‘관’주도의 사회보장 정책에 ‘민’의 참여를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사례관리 대상자를 발굴하고 그들을 지원할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동안의 사회복지 전담공무원과 일부 민간 사회복지기관의 인력과 예산만으로는 송파세모녀사건과 같은 비극을 예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송파세모녀법’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인 저소득가정에 대한 기본적인 사회보장을 민간에 떠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긍정적인 부분만 살펴보고자 한다.

 예전의(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며 살아온 민족이다. 김장을 하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이웃에 홀몸노인이 계시면 반찬을 해다 드리며 안부를 살폈으며, 동네 형들이 동생들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우리들의 자발적이었고, 자연스러웠던 나눔과 함께하던 모습이다. 지금은 ‘송파세모녀법’을 통해 제도화되고 법제화돼 보다 체계적으로 이웃을 돌보고 이웃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자 하는 모습들로 진화됐다.

 읍면동보장협의체를 통해 발굴된 사각지대의 대상자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지 민과 관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한다. 상황에 따라서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 등록을 시키거나 긴급복지지원비를 신청해 급한 불을 끌 수도 있고, 민간 사회복지기관에 의뢰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협의체 위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모금을 하기도 한다. 이미 각 동별로 적게는 수백만 원부터 많게는 수천만 원이 모금돼 필요한 곳에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이제 법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식의 발현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민과 관의 긴밀한 공조(共助)를 통해 입법취지였던 사각지대 해소라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부 차원의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대안과 인력·예산 지원은 필수사항일 것이다. 하지만 위의 글처럼 민과 관의 유기적인 공조(共助)시스템과 예전의 골목길 정서가 묻어나는 지역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잘 어우러진다면 막대한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지 않더라도 ‘송파세모녀사건’과 같은 비극을 조금이라도 예방하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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