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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재미와 일탈을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현실과는 다른 짜릿한 경험이야말로 오락영화의 매력이다. 이처럼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드는 것 외에 영화의 또 다른 역할은 없을까? 영국 출신의 노장 감독 켄 로치는 줄곧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고민해 왔고 그 생각을 반영한 영화들을 창작해 왔다. 국내에 지난해 12월 소개된 바 있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도 켄 로치 감독은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심과 행동을 촉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이 영화로 2016년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12일 열린 영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도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인간의 편에 서서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나 보자.

오랜 병간호 끝에 아내를 잃은 다니엘은 그의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둔 상태다.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 그가 이제 기댈 곳은 정부 지원금으로, 다니엘은 질병수당 신청을 위해 관공서를 찾는다. 그러나 시작부터 그는 생각지도 못한 벽에 직면하게 된다. 우선 접수창구의 직원은 그의 건강상태 확인을 위해 여러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 중 어느 하나도 그의 심장과 관련된 사항은 없었다. 걸을 수 있느냐, 손은 움직이느냐 등 일반적인 신체활동에 대한 질문들만이 가득했다. 개인에 대한 고려 없이 매뉴얼대로만 물어온 질문에 다니엘의 질병수당 신청은 결국 기각된다. 생계를 위해 다니엘은 실업수당이라도 신청하고자 했지만 평생 컴퓨터를 모르고 살아온 그에게 안내 직원은 인터넷으로 서류를 제출하라는 퉁명스러운 답변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다.

성실히 살아온 지난날은 간데없고 민영화된 복지시스템의 높은 문턱 앞에 그는 염치없고 뻔뻔스러우며, 고집불통에 게으르고 수당이나 축내는 무기력한 낙오자로 낙인 찍혀 버리게 된다. 얼마나 더 비참하게 고개를 숙이고 모욕을 참아내야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시민이자 이웃으로, 굽실대야 할 까닭도 그렇다고 자선을 바라는 것도 아닌 인간으로의 존엄과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일이냐고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여든에 접어든 켄 로치 감독은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감독으로 데뷔 이래 한결같이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주제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야기해 왔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역시 그의 전작들과 다르지 않게 노동자 및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특히 불합리한 복지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이 작품은 더 이상 약자와 소외계층에 서 있지 않는 복지제도의 맹점과 복잡한 관료주의의 허점을 꼬집고 있다. 이와 동시에 불법과 매춘, 절도와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는 개인적 일탈이 아닌 빈곤이 불러온 촘촘한 연쇄작용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희망의 끈 또한 놓지 않는다. 각박한 현실에서도 따뜻한 인간애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이 작품은 다니엘의 일상 곳곳에 심어 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변화는 바라고만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할리우드식 해피엔딩과는 다른 결말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스스로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불합리한 시스템에 고개 숙이기보다는 자각하고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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