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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홍 시인
문학은 피가 도는 인간의 영감(靈感)을, 인본주의를 명제로 토로한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차디찬 쇳덩이로 조합된 기계의 반도체(뇌)에서 발현된 문학작품이 화제라면 어떨까. 최근 언론 보도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말로만 듣던 인공지능(AI)의 경이로운 진보를 보면서 가슴 한편으로는 암담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보도 내용은 이렇다. 일본에 마침내 ‘로봇작가’가 탄생했다는 것인데, 놀랍게도 이 로봇은 신분을 감춘 채 유력 문학상에 응모해 심사의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나중에야 AI의 작품인 줄 알고 경악했지만, 작품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로봇을 설계하고 작품을 명령한 연구진에 따르면, 대략의 스토리 구성이나 등장인물을 설정하고 로봇은 주어진 단어와 수식어 등을 조합해 문장을 이루어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천 자에 이르는 의미 있는 문장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성취"라고 평가했다.

 필자의 옛 기억 속 영화 중 찰턴 헤스턴(Charlton Heston)이 주연한 ‘혹성탈출’이 있다. 1968년도 작품이니 50년쯤 된 이른바 SF영화의 고전이 될 법한 영화다. 요즘도 혹성탈출 시리즈가 개봉되는 걸로 아는데, 아마도 이 영화가 원조인 듯하다. 줄거리는 지구를 떠난 탐사대가 우주를 떠돌다가 혹성에 불시착해 겪는 고난과 인간정신의 구현을 그렸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히 박혀 있다. 주인공 찰턴 헤스턴이 혹성의 지배자인 유인원들의 추격에서 벗어나 도착한 해안의 모래사장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자유여신상의 모습에 절규하는 장면이다.

 결국 오래 전에 핵폭발로 멸망한 지구가 이 혹성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당시의 감동과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울러 모든 가치는 인간이 중심이 되고, 설사 돌연변이나 비윤리적인 과학의 발달이 생성된다 해도 올곧은 인류의 이성(理性)은 그것들을 제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아무리 문명의 발달이 궁극에 이르러도 인간과 동일하거나 초월할 수 있는 복제인간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신념이 형성됐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의 이런 신념은 21세기 첨단과학의 눈부신 진보를 보면서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 AI 알파고가 바둑을 둬 인간 최고수인 이세돌 9단을 4대 1로 이긴 일은 화제였다. 그런데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그 알파고는 프로기사들을 상대로 60전 60승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바둑계에서는 알파고를 ‘알신(神)’이라고 부른다는 소문도 들린다. 이미 바둑계를 평정한 AI는 이제 문학·음악·미술 등 예술계를 넘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예술은 고차원적인 창작의 세계이다. 이른바 영혼의 교감이나 번뜩이는 각성이 없이는 창조의 문턱에 진입할 수 없다. 결국 부여된 물질 이외의 신성(神性)을 갖추지 않은 기계적인 이종복합(異種複合) 결과물은 창조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모방일 뿐이다.

 그런데 이 막연한 두려움과 암담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신의 영역을 넘보던 유일한 유기체는 인간일 뿐이었다. 만약 인간이 발명해 가고 있는 AI의 진화가 극성에 이르러 희랍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半人半獸)처럼 기괴한 ‘반인간 반로봇’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인간인지 AI인지 뇌 구조의 분별이 모호한 시대가 온다면 어찌될까. 모골이 송연해진다.

 필자의 이러한 의심과 회의는 현재로서는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기우일 것이다. 어디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피조물에 신성이 부여될 수 있단 말인가. 피가 흐르지 않는 로봇 스스로가 어찌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AI의 문단 데뷔 소동이나 렘브란트의 그림을 모방해 그린 로봇 작품이 샌프란시스코 전시회에서 8천 달러에 팔렸다는 뉴스는, 아직은 필자에게 약간은 신경 쓰이는 가십(gossip)거리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AI의 등장과 활보가 장차 슈클롭스키(Victor Shklovsky)가 주창한 ‘낮설게 하기(making strange)’의 문학적 소재로 풍미할 것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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