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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국성 변호사
지난 금요일 오후 2시에 국선 변호 사건을 진행하기 위해 법정을 향했다. 빈부의 격차가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해주는 국선 사건이었다. 보통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면 어떻게 저런 금액을 배상하지 못해서 형사 재판을 다 받느냐고 할 극히 소액의 배상을 해 주지 못해 불구속 재판을 받는 피고인을 위한 국선 재판이었다.

 그런데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1987년부터 거의 30여 년을 법정에 다니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재판을 겪어 보았지만 그날의 재판을 참으로 잊을 수 없었다.

 참으로 특이하게도 본인이 직접 본 모든 사건은 하나도 예외 없이 실형이 선고되고 피고인에 대한 구속이 즉시 집행됐다. 더욱 놀라운 일은, 법정에서 즉시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되는 피고인 중 상당수가 징역 1년 미만이었고 심지어는 징역 4개월짜리도 있었다.

 1심에서 징역 4개월의 형을 선고 받아 법정에서 구속이 집행돼 형을 살게 되면 그 피고인은 항소심에서 자기 방어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무죄를 주장하다 보면 자칫하면 4개월을 다 살고 나와서 무죄 재판을 받아야 할 지도 모른다. 혹은 4개월 동안 구속된 피고인의 회사가 망가질 수도 있고 가정의 파탄도 올지 모른다.

 국민들은 믿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전국의 법정에서는 수많은 국민이 법조 경력이 10년 전후이고 나이가 30대인 젊은 법관에게 자신과 가정과 회사의 운명이 달린 재판을 받고 형의 선고를 받고 있을 것이다. 법조 경력 내지 사회 경력 10년 전후라고 한다면, 일반 회사로 보면 겨우 대리 내지 과장 정도의 직책을 담당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자신도 성숙의 과정이요, 경험의 과정에 있는 성장과정의 젊은 한 법관에게 회사와 가정과 개인의 모든 것을 책임지도록 강제하고 있는 구조가 현행 사법 시스템이다.

 폭행의 상습이 있다거나 증거를 조작하거나 인멸하거나 재범의 위험이 있다든가 타인의 범익 침해를 손 쉽게 할 사정이 보인다면 그런 사람은 수사 초기부터 구속을 시키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여기에 해당하지 않고 단순한 사건에 대해 1심 법정에서 구속을 집행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최근 초일류 기업 총수에 대한 영장 실질 심사 사건을 접하면서 해당 총수가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떠나서 역시 현 사법체계가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사회의 모든 일, 사건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고 얼마나 상반된 의견들이 존재하는 지는 2∼3명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이나 대화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조그만 일이나 사건에 대하여도 나와는 전혀 다른 서로 상반된 논리들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는 다원화된 민주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인신 구속 문제에서는 어떻게 한 법관에게 그 모든 논리와 이성과 이유를 통합해 판단을 내리도록 할 수 있을까!

 개인의 존엄성에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는 인신 구속에 대하여는 법관 한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 10여 명 이내로 구성한 기구에서 구속 여부를 결정하도록 법을 개정함이 필요하다.

 법관 한 명이 그 많은 시민들의 행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인신 구속을 결정해 그 즉시 법정에서 구속하고 있는 현 법률체계는 너무나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통합적인 사고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아무리 잘 하는 법관이라고 해도 반대의 논리, 같은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논리, 다른 것 같지만 서로 같은 논리를 펼 줄 아는 다양한 가치관의 사람들의 종합적인 판단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더 든다고 해도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있는 현재의 법관 한 명에 의한 인신 구속 제도는 반드시 변경돼야 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든, 시골과 어촌의 이름 없는 개인이든 ,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고 있고 국가는 이를 확인하고 지켜 줄 의무가 있다.

 현재와 같은 법관 한 명에 의한 인신 구속 제도는 인간의 존엄성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우리의 잘못된 사법제도이므로 조속히 변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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