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화창한 휴일 경치가 좋은 공원에서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셔터를 눌러 댄다. 지면에 게재할 좋은 휴일 스케치 사진을 얻기 위해 한참을 그렇게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내게 누군가 다가오더니 "사진을 왜 찍으시는 거죠?"라고 묻는다. 이 상황에서 기자인 내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 이 사람 초상권을 이야기하겠구나"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은 내게 초상권이 있는데 왜 허락 없이 사진을 찍느냐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초상권 문제는 둘째 치고 "글쎄요. 왜 사진을 찍을까요?"라고 스스로 물어본다. 어떤 이는 아이들이 자라는 성장과정을 담아두고 싶어서일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아름다운 젊은 날의 초상을 남기기 위함일 것이며, 또 다른 어떤 이는 여행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내가 처음 카메라 셔터를 눌렀을 때의 느낌을 돌이켜 보면 SLR카메라의 ‘찰칵’거리는 미러와 팬타프리즘이 맞닿으며 내는 마찰음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국내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이라 불리운 고 홍순태 선생은 사진 찍기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눠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 하나는 역사의 순간을 얼려서 시간의 냉장고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의 부류는 그 순간을 마음의 이미지로 각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체로 양극단의 중간 어디쯤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사진을 열심히 찍고 나서도 무언가 흡족하지 못하고 미련이 남은 것처럼 느낄 때 그 미련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동시에 그걸 프레임 속에 담아넣는 창조 행위에 따른 보람을 느낄 때만 내가 촬영한 사진에 대한 아쉬움, 미련이 남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공원에서 아니면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누군가 또 다가와 "왜 사진을 찍으시는 거죠?"라고 묻거든 "초상권이 어떻고 라며 설명하기보단 창조의 즐거움 때문에 사진을 찍어요"라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김상용 시인은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라 했는데 나는 내 마음의 창을 남쪽으로 내서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보려 한다. 그리고 "왜 찍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라고 말을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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