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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기호일보 독자위원
마이웨이를 말할 만한 세월을 살았다. 인고의 시간이 억울하다 싶어질 때면 체증이 온 것처럼 명치가 답답해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원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속절없이 성인군자 코스프레로 마무리하는 자신이 못나 보인 적도 있다.

뒤끝에 힘이 실리지 않으니 실세는 물 건너가고 결론은 무안당한 모양새다. 평화를 위해서라고 거창하게 의미 부여를 하면서 위로를 해 보지만 자존감 존중에는 미덥지 않아서 마음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거칠 것 없이 쏘아 올리지 못한 대신에 세상 어디를 가든지 단정한 인사를 할 수 있기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일전에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13시간의 장거리 비행이라 지루한 기내에서 읽을 책과 감상할 노래를 준비했다. 책은 기내 소등으로 조명을 켜 놓고 읽다 보니 불빛에 눈이 아프고 옆 좌석 승객이 수면용 안대를 끼는 모습을 보고 민폐인 것 같아서 덮었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팝송도 포크송도 이탈리아 칸초네도 들어있는 음악 파일이 장거리 비행의 지루함을 달래는데 도움이 됐다. 앞과 뒤 옆 좌석의 승객은 모두 잠이 들고 홀로 깨어 노래를 들었다. ‘마이웨이’ 노래가 프랭크 시나트라의 중후한 목소리에 실려서 흘러 나왔다. 좋아하는 노래라 자주 듣는 곡인데 유난히 가슴이 뭉클하면서 가슴에 펀치를 맞은 것처럼 충격이 왔다.

1만m을 넘나드는 상공을 시속 700km 이상의 속도로 날고 있는 비행기의 기내에서 홀로 마이웨이 노래를 듣고 있으니 당당하게 내 세상을 살자, 유치해도 좋을 감정이 솟구쳤다. 장수 100세 시대라고, 본인 위주의 삶을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했지만 가슴에 결의가 찬 경험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눈 감으면 모든 것이 도로 무(無)인 세상인데 타인의 감정이나 이익을 위해 무한정 물러서고 인고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일까? 마음에 갈등이 왔다. 생각을 행동으로 직진 실행하지 못하는 성격을 알기에 부담이 됐다.

앞좌석에 달린 모니터에 지상 1만m 상공의 비행기 외부의 기온이 영하 61도라는 안내 숫자가 보인다. 어마어마한 추위를 보온해주는 기내가 나를 둘러싼 환경일까? 인고의 대가로 누리는 혜택일까? 무리수를 두지 않더라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겠다 싶어서 약점의 모순을 끌어안았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노랫말에 자신의 인생을 담은 이야기를 했다. "끝이 가까이 다가오는 시간, 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바쁘게 살았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모든 고속도로를 다 달리면서도 내 방식대로 해 왔다."

후회도 있었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만을 지켜봐 왔고 내가 할 일만 했다고 친구에게 들려준다. 후렴으로 "그리고 내 방식으로 해 왔다는 것을"이 반복된다. "사랑했고 웃었고 울었고 고생도 하고 쉬엄쉬엄한 적도 있지만 난 그 모든 게 재미있어 보이는 거야. 세상이 내가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리고 내 방식으로 해왔다는 것을." 유독 가슴에 꽂히는 노랫말이다.

나는 여행에서 야무진 아가씨를 만났다. 갓 서른 살이 된 아가씨는 인생관이 확실했다. 명문대를 나온 것으로 더 이상 시류편성은 그만하겠다고 했다. 누구를 롤모델로 삼아서 누구처럼 되고 싶지 않다며 나는 나인 누구로 살겠다고 한다. 성공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고 행복한 시간을 즐기며 일에도 사람 관계도 여가생활도 선택한 일에 당당할 것이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라고 해서 마이웨이 노래가 떠올라 심쿵했다. 당찬 아가씨의 선택을 존중하며 내심 부러워하며 그녀와의 동행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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