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지’라는 말이 정치권, 아니 야권 내 공방의 도화선이 됐다. 심지에 먼저 불을 붙인 쪽은 야권의 경쟁력 있는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다.

안 지사는 지난 19일 부산대학교에서 열린 ‘즉문즉답’ 행사에서 문제의 발언을 내뱉었다. 당시 안 지사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평가하며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시려고 그랬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그 누구라도 그 사람의 마음은 액면가대로 선의로 받아 들인다"고도 했다.

이후 야권 내부의 비판이 봇물처럼 터졌다. 반어법이라는 안 지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야권 대선주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안 지사를 몰아세웠다.

물론 일각에서는 안 지사의 ‘선한 의지’ 발언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증오의 정치는 국론만 분열시킬 뿐이라는 옹호론도 나온다.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상대방이 존재하는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도를 ‘악’이 아닌 ‘선’으로 전제해야 한다는 뜻일게다.

하지만 기자의 귀에도 안 지사의 발언은 나가도 너무 나간 발언으로 들린다. 전대미문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국면이라는 엄중한 시기를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그의 발언은 자칫 제 아무리 나쁜 결과를 초래했더라도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니 만큼 정상 참작은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면죄부는 줘야 한다는 항변으로 읽힌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책임정치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유대인 대학살도, 5·16 군사쿠데타도, 광주학살도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 셈이다.

‘이게 나라냐’, ‘도대체 손대지 않은 곳이 어디냐’는 자조가 나올 정도의 어지러운 국정농단이 선한 의지에서 출발했을 리 만무하거니와 천만 번 양보해 그렇다고 치면 문제는 없어지나.

우클릭이라는 비아냥에도 ‘대연정’ ‘선한 의지’ 발언 등등으로 일시적으로 외연은 확돼할지 모르지만 이건 좀 아니올시다. 서운해 마시라. ‘선한 의지’로 한 얘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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