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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時調人
우수도 되기 전에 개구리가 벌써 알을 슬었단다. 개구리가 잠을 깬다는 경칩은 아직 열흘이나 남았는데 말이다. 온도 상승이 예년 절기보다 점점 빨라지고 있다. 불확실성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모두가 제 할 일에 충실해야 한다. 말 없는 수도권 도시의 발코니 수목에도 벌써 살포시 꽃눈이 텄다. 연분홍 수줍음이 서린다. 어김없는 봄소식을 졸작 시조 한 수로 대신한다.

 앞뜰에 해볼그레 / 홍매화 막 꽃순 열면∥뒤뜰에도 뒤질세라 / 녹매화 갓 눈을 뜨니∥살바람 / 매신(梅信)에 놀라 / 골목어귀 돌아서네. ―‘봄소식’ 전문

 

시조(時調)는 그 시대에 지어 읊거나 노래하는 것이다. 고시조다 현대시조다 하는 것은 늘 지금 이 시대를 기준으로 편의상 분류한 것일 뿐이다. 오늘 본인의 ‘봄소식’이란 단시조도 훗날 어느 날에는 과거시조 내지 고시조가 될 것이다. 그러니 당대의 시이거나 노래인 시조는 연면히 현재에 살아있는 것이다.

작년 7월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시조집인 「청구영언」원본이 공개됐다. 조선 영조 1728년 김천택이 편찬했다. 총 580편의 시조가 실렸으며, 조선 건국 전 읊었다는, 그 유명한 정몽주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가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어이하여 지금에야 나타난 것일까?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건만. 1920년대 시조부흥운동이 빛을 보지 못하고 지내오다가, 바로 제2의 시조진흥운동이 일어난 2010년대 중반, 이즈음이 정통성을 회복할 적기여서인가.

저 김천택이나 그후 조선 3대 시조집의 하나인 「해동가요」의 편찬자 김수장 등은 시조야말로 민간의 진솔한 언어로 경험과 감정을 노래한 문학이라고 했다. 이전 양반 중심의 한문학에서 한글로 된 국문문학이 18세기 조선 후기에 위항문학으로 펼쳐진 것이다. 이에는 시조가 한몫을 했다. 이른바 위항인은 당시 신분제도 아래에서 중인, 상민 등 평민을 일컫는다. 지금으로 말하면 일반 서민대중이 아닌가. 일반서민이 부르는 민요나 가요는 영속될 여지가 크다. 여말 조선조에 일부 사대부가 부르다가 끊어진 경기체가를 보면 자명하다. 그런데, 우리 시조는 여러 기원설이 있다. 향가, 무가, 민요, 속요 등 어쨌든 대개가 밑바닥 토속 민중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선 초·중기 일부 사대부 위주로 활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매창, 황진이 등 기생들이나 이름 없는 평민들도 이를 즐겨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어쭙잖은 본인의 개인 소견이다. 아직도 시조는 말하자면 시조인들 전문가 집단의 영역 안에 있다. 요즘은 상당히 등단이 쉬워졌다. 여러 문학지 신인상이나 신춘문예 당선이 그것이다. 5천만 국민 중에 시조인 1천여 명 되는 시조단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신분사회 몇 백만 명의 총인구 사회에도 평민은 시조로 회포를 풀었다. 이 시대 무슨 난공불락의 성역처럼 기득권에 안주해 시조인 되기를 막아서야 되겠는가.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는 지난 몇 년간 충주시 수안보 지역에서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을 치렀다. 주요 모토 중 한 가지는 ‘우리 시조를 일반 주민에게 널리 알리자!’는 것.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지역주민을 포함한 일반인을 행사에 참여시켰다. 글로 쓰는 시조는 단순히 창(唱)이 아니고 누구나 자유시처럼 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오히려 조금만 익히면 쉽게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쉬이 쓸 수 있으니 천 년 가까운 세월을 민초와 함께해 왔지 않은가. 올해도 제4회 축전 행사가 4월에 열릴 예정이다.

본인은 햇수로 지난 5년간 충주 수안보에 거주하면서 지역의 여러 명승, 산하 등을 직접 답사하고 지은 시조를 모아 「수안보 속말」이라는 시조집을 발간했다. 이를 참고 삼아 직접 곁에 있는 명물을 보고 충주 수안보 주민 각자가 시조를 지으면 좋겠다. 관객을 대할 때 주민 누구나 한 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작은 운동이 충북도로, 전국으로 번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의 문운이 트기 시작한다. 시조가 앞장서게 될 것이다. 일반 서민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시조는 오히려 일반 서민의 것이었다. 시조는 일반 서민의 것으로 되돌려야 할 시가(詩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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