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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용호 부천교육지원청 교수학습국장
2월의 학교는 태아 같은 땅속 움들처럼 새 학기 새 단장으로 소리 없이 바쁘다. 특히 이번 새 학기는 초등학교 한글교육 강화, 중학교 자유학년제,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과 석식 등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야간자율학습으로부터의 해방’이 진행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안타까움과 절실함이 마음에 맴돈다. 굳이 규정하자면 상식에 관한 것이다. ‘야자로부터의 해방’을 거론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방향은 옳으며 공감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뒤에 꼭 ‘그러나∼, 하지만∼’에 이어 폐지할 수 없는 사유를 붙인다. 석식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인 입장에서 들어보면 맞는 말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방향이 옳다는 것은 상식적이라는 것이고 상식적이기 때문에 옳다는 것이다. 저녁밥을 학교에서 먹는 것이 상식적인가? 우리 생활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두 끼를 집에서 먹는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상식이다. 어쩌다 상식을 벗어난 것을 예외라고 한다. 만약 아이들이 학교에서 두 끼를 해결한다면 어쩌다 상식을 벗어난 예외에 해당한다. 결국 학교 교육이 예외의 틀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2000년 전후 고 3학생들은 7시에 등교했다. 그리고 눈에 붙은 잠을 떨치지 못해 거의 하루 종일 식물인간처럼 졸다가 밤 10시, 속칭 우수반 학생들은 11시, 심지어 그 다음 날 1시까지 별도의 자습실에서 야자라는 걸 하고 갔다.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가 ‘선생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로 바뀌었던 시절이었다. 가정과 학교가 뒤바뀐 모습이다.

 9시 등교는 그런 비정상적인 학교의 모습을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야자로부터의 해방’도 이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므로 그 방향이 옳다면 단서나 사족을 붙일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식적인 선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것인가를 힘을 보태 궁리해야 한다.

 아직 학교에는 비정상적인 것이 더 남아 있다. 바로 보충수업이다. 가뜩이나 과도한 학습량에 치여 흥미를 잃어가는 것이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보충수업을 한다는 것은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의미와도 같다. 보충수업이 없어지면 학생들은 좀 더 자유롭게 ‘꿈의 대학’을 비롯해 자기가 원하는 활동을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삶의 길 찾기 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한글과 영어, 숫자를 가르치는 것도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육과정이 없으면 학부모들이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한글과 숫자, 영어를 빨리 익히는 것을 아이들의 성장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그릇이 굳어지기 전에 모양을 바꿀 수 있는 것과 같은 영유아기는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다. 함께 하는 놀이를 통해 원만하고 협력적이며 바람직한 인성을 지닌 아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본을 익히는 것이다. 부모와 교사는 그 시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교육과정 지침으로 초등학교에서는 한글교육을, 유치원에서는 놀이중심 교육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 밀려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상식은 질서를 세우는 원칙이기도 하며 개인과 사회를 행복하게 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부터 상식을 온전히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는 교육과정은 운영하는 곳이다. 교육과정에서 정해진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 역시 하루 일을 마친 어른들처럼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큰 틀에서의 상식이다. 학교가 이런 기본적인 상식조차 지키지 못할 때 아이들은 은연중에 비상식적인 것을 받아들여 상식과 비상식을 혼동하는 잣대로 세상을 가늠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몰상식한 곳으로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학교는 자유학년제의 도입 취지에서 보듯 여유로운 가운데 학생들이 현재를 즐기면서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배운 행복감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힘의 바탕이 되도록 현실적 논리에 밀린 상식의 자리를 찾아가는 새 학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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