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범 아나운서.jpg
▲ 원기범 아나운서
지난주에 자율형 사립고인 상산고등학교의 졸업식에 다녀왔습니다. 「수학의 정석」 저자로 유명한 홍성대 박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홍 이사장은 미증유의 베스트셀러인 「수학의 정석」 수익금으로 1980년에 학교법인 상산학원을, 그리고 그 이듬해에 상산고등학교를 세웠습니다. 학교 설립의 이유는 독자들이 ‘수학의 정석’에 보여준 사랑과 성원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그의 일념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투철한 건학정신과 교육신념으로 지금까지 37년간을 한결같이, 학교 이름(象山)마냥 코끼리처럼 묵묵히 걸어 왔던 것입니다. 그동안 재단에 출연한 사재가 수백억 원이 넘는다고 하니 ‘인재 양성’이라는 그의 숭고한 뜻이 바위같이 단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사단법인 한국 사립중고등학교 법인협의회 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하면서 다른 사학들의 어려움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 밖에도 기초과학 육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분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에는 제30회 인촌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제34회 졸업식에서 홍성대 이사장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교육 철학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여덟 살에 광복을 맞은 그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뜻을 버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랬듯이 매우 궁핍한 삶 속에서도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됐습니다. 등록금, 하숙비, 책 값, 식대 등 제반 비용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도저히 그 돈을 대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학의 산물이 바로 ‘수학의 정석’이라고 홍 이사장은 고백합니다. 스물일곱 약관의 나이에 집필을 시작해 3년 후인 서른 살 때에 출간의 영광을 맛보게 됩니다. 물론 젊은 패기에 무턱대고 집필을 시작하던 그때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식은땀이 날 정도로 민망하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전한 첫 번째 교훈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때가 이르렀을 때 부지런히 힘쓰라’는 것입니다. 상산학원을 세운 때도 그의 나이 마흔 넷이었다고 하니,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추진력을 갖췄다 할 것입니다.

 도연명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라(及時當勉勵).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歲月不待人)." 홍 이사장의 인생관 혹은 교육관과 많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가 「수학의 정석」 집필을 통해 얻은 두 번째 교훈은 ‘내가 잘 할 수 있고 즐거워하는 일, 그리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스스로가 집필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책을 쓰는 일’이 세상 어떤 일보다 즐거웠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리고 학생들의 수학 공부에 좋은 벗이 될 것이라는 선한 목표와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자는 일찍이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고 설파했습니다. 홍 이사장의 신조와 일맥상통합니다.

 공교롭게도 저의 졸저인 「소통의 정석」이 「수학의 정석」과 제목이 비슷해서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홍성대 이사장의 인생철학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즐겁기 때문에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에, 부지런히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는다면 기필코 그 꿈은 이뤄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상산고등학교의 잘 정돈된 교정에는 ‘상산인의 헌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문장만 소개합니다. "상산의 동산에서 가꾸어진 꿈이 여물었을 때 뒷사람은 그것을 역사라고 일컬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에게 주어진 길을 걷고 있습니다. 크건 작건 나만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훗날 어떤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억되실까요?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