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소 고지(Hacksaw Ridge)
139분/드라마/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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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주의자, 양심적 집총 거부자가 자원입대해 전쟁에 나간 경우가 있을까? 적군이 총구를 겨누는 상황에서 총 없이 전장을 뛰어다닐 수 있을까? 또 총알과 폭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상부의 후퇴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부상을 당한 채 총상을 입은 동료들을 홀로 구해낼 수 있을까?

말 같지도 않는 세 가지 질문에 모두 ‘예(Yes)’라고 말한 실존 인물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77사단 307보병대 의무병으로 참전한 데즈먼드 토머스 도스(Desmond Thomas Doss)이다. 그는 1945년 5월 5일 핵소 고지 전투에서 무기 없이 75명의 생명을 구한, 기적 같은 일을 벌인 주인공이다. 1946년 병장으로 제대한 그는 총을 들지 않은 군인 최초로 미국 정부가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명예의 훈장’을 받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영화 ‘핵소 고지’는 의무병 ‘도스(앤드류 가필드 분)’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면서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영웅’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연출을 맡은 멜 깁슨 감독의 의도는 그게 아닌 듯하다. 다큐멘터리적인 전쟁영화는 아니지만 종교영화로 칭해도 좋을 정도로 좀 헷갈리는 면이 사실 있긴 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희망’과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 주인공 도스를 통해 종교적인 질문도 관객들에게 던지기 때문이다.

실화지만 약간 과장된 내용도 있다. 총을 들지 않겠다는 이유로 사격훈련을 거부한 도스를 동료 병사들이 구타하는 장면 등이다. 재미를 위해 가미한 내용이다.

1945년 10월 12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서 ‘명예의 훈장’까지 받는 영웅 이야기가 왜 이제야 영화화된 걸까?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모든 제안을 도스가 거절했기 때문이란다. ‘진짜 영웅은 땅속에 묻혀 있는 동료들’이라는 말과 함께. 그는 87세의 나이로 2006년 사망하기 직전에야 자신의 삶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해도 좋다고 허락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도스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일화, 도로시 쉬테(테레사 팔머)와의 연애·결혼, 가족들의 입대 반대, 집총 거부에 대한 동료들의 조롱과 멸시, 핵소 고지에서의 영웅담 등등.

모두 영화관에서 직접 보기를 권한다. 컴퓨터그래픽(CG) 제작 대신 사실적 촬영을 강조해 실감나는 장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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