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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혼란스럽고 불편한 국내 정국(政局)은 세계 각국의 정치적 변동과 한중일의 정치, 경제, 군사문제, 여기에 과거사의 영역 갈등까지 맞물려 사회적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23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중하위권이고, 사회갈등지수는 29개국 중 7위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불안한 사회에 대한 심리적 방어기제((防禦機制)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불신이 팽배하니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고 심지어 사회에 대한 원망이 불특정인에 대한 보복성 범죄로 표출되거나, 개인이든 단체든 의견이 다르면 타협점을 찾기보다 일방적으로 매도해버리는 극단적 이념 대립까지 보이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이권(利權)에 대한 규제나 규칙이 과도하게 생성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확산으로 웹(Web)에서의 다양한 기술과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디자인이나 기술 개발자에 대한 권리가 강화된 것이 현실이지만, 언제 어떻게 규정됐는지 법률적인 정보를 채 접하기도 전에 일반인들은 법적 제재를 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추구했던 대중의 편리나 기여를 위한 공익성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손해 보상에 따른 법적제재가 우선시되는 경향이다.

사회가 분화되지 않았던 원시시대에는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 많은 규제가 필요하지 않았다. 초기 고조선시대는 ‘8조의 금법(禁法)’만이 있었다. 현재 8조 중 3조만 전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른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임을 당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보상한다. 도둑질한 자는 남자일 경우에는 피해자의 노(奴)로 삼고 여자일 경우에는 비(婢)로 삼는다. 스스로 배상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사람당 50만의 돈을 내야 한다는 항목이다. 이 금법은 당시 사유재산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계급 분열의 초기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사회가 분화되면서 위만조선을 거쳐 한군현시대까지 내려오는 동안에 공동체를 규제하는 규칙은 60여 조로 늘어났다. 가장 기본적인 규칙만 있으면 불편 없이 생활했던 사회가 점차 발전하면서 구성원 간 사유재산의 개념이 확대되자 이를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복잡한 법칙들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전통사회의 정점인 조선시대에 와서 고려 말부터 성종 15년(1484)까지 약 100년간에 반포된 제법령(諸法令) 교지·조례 등을 총망라한 「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정리됐다.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도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이후 9차례의 개정을 거쳐서 전문과 10장의 본문, 6조의 부칙 등 총 130조항으로 구성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을 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사회가 첨단기술에 의해 지능화되고 발전할수록 이에 부합하는 여러 법규와 복잡한 제도들이 만들어져 편리함보다는 그 규제 속에 구속당하는 느낌이 든다. SNS가 확대되면서 인터넷상에서 쉽게 접하는 모든 정보와 통신 내용, 글, 사진, 심지어 글씨체 등 이미지화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저작권이 적용돼 어떤 법적인 규제가 생성됐는지 모르면 자칫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정신적 피해도 생길 수 있다. 이 시대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궁극적 목표가 개인 혹은 기업의 배타적 이권 창출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정보기술혁명을 통해 세상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변해 갈지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회공동체의 주체인 인간의 성정(性情)이 이에 부응할 필요는 없다. 100년 전, 혹은 1,000년 전 생활했던 그 시대의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나 이웃 간의 기본 도리(道理)나 상규(常規)가 오늘날이라 해서 달라져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신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은 지나친 법 규제와 규칙의 확장이 아니라 인간성과 공익성의 회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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